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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윌 듀런트 지음, 유유 펴냄)
19세기 초,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종교의 신성함이 해체되고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 삶의 무의미함, 소위 말하는 '진리'가 가져다 준 불안과 퇴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퓰리처상 수상 저자가 전 세계 100인의 각 분야별 거장들에게 보낸 편지와 그 답장들을 담았다. 사업이나 연구 등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일의 성취감에서 의미를 찾고(또는 답장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문학가와 지성인들은 작품세계나 사상이 답변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점이 재밌다. 창조론이 무너지고 생명과 인류의 탄생이 우연의 일치였음을 밝혀낸 발견에서 오는 충격이 큰 탓인지 종교가 삶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많다. 여러 답변이 있었지만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진부하지만 인간의 내면적 선함을 믿는 의견들이다. 진리는 종교에도, 과학적 발견에도 있지 않으며 믿고 나아가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남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는 인간 내면의 선의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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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천우연 지음, 남해의봄날 펴냄)
내가 처음 예술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예술의 무엇이 나를 매료시켰나? 예술을 사랑하게 된 계기와 예술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원천을 되돌아보게 만든 책. 예술이란 곧 창조이고 창조하는 행위에는 자격이 필요치 않은데, 자본과 시스템은 예술에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예술을 하는 사람(연출, 디자이너 등)과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스탭, 관객 등)으로 철저히 나누고, 그래서 예술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그 시스템 안에 있는 나도 외로운가 보다. 책에서 '축제는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했다(p.95)'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통의 여지 없는 극장에 앉아 한 번 보고 끝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예술가가 되고 그로 인해 삶이 바뀌려면 역시 근본적인 대책은 구성원 전원이 참여하는 예술 공동체라는 원시적 형태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 내내 자연 속에 살면서 주민 전체가 예술 행위에 참여하는 이런 곳도 있는데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가슴을 쳤다. 뮤지컬은 특히나 자본주의와 엔터테인먼트의 끝에 있어서, 왜 예술이 하고 싶었는지, 사람들에게 뭘 보여주고 싶었는지 잘 잊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창조하는 행위가 예술이고 그러한 예술은 삶을 바꾼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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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펴냄)
어머니와 아버지, 슬하에 자식 한, 둘 - 그 어디보다도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이 크면서 아동학대, 가족기반 붕괴 등의 문제는 개별 가족에게 돌려버리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여러 가족의 형태를 포용하고 궁극적으로 가정의 안정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지 살펴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이나 덜 자란 인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국가 법률 차원에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데, 조건 없는 양육비 지원과 유급 육아휴가 의무사용제도 등은 양육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각각의 가정에게만 돌리지 않고 국가, 즉 공동체가 책임짐으로써 육아의 부담을 덜고 부모가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한다. 결국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고, 개인이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가정이 붕괴되지 않으려면 가정의 폐쇄성을 탈출하고, 교육, 주거, 최저생계비 등 어른 뿐 아니라 어린이까지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가정의 안정에 국가가 개입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들은 공동체 속에서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책의 부제인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에 부합한다). 1인가정, 다문화가정, 편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대두되고 있고, 개인의 자율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존중 받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소통하고 소속되고 싶어하여 공동체가 완전히 와해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기존의 혈연관계가 아닌 이해관계나 취향의 공통분모대로 모여 다른 유형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개개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집단주의가 약한 사회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오히려 국가와 제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북유럽은 개인주의 성향이 짙지만 오히려 가족 간의 유대감은 강하다고 하니, 결국 개인이 자율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토양이 생기면 자연스레 그런 공동체가 생기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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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arte 펴냄)
할아버지, 아버지, 톰 아저씨와 함께 여느 때와 같이 나간 사슴사냥에서, 처음 사격을 허락 받은 11살의 주인공은 밀렵꾼을 쏘아죽이고 만다. 저자는 인류가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카인의 후예들로서, 살인에 대한 욕구는 인간 내면에 있는 근원적인 충동이라고 가정을 두고 있다. 애초에 사냥 행위가 살인에서 본질적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신들에게 최초로 저항하고 역설적으로 자유를 얻은 카인처럼, 소설은 주인공이 살인을 통해 진정한 어른(인간)이 되는 것처럼 묘사한다. 주인공이 죄책감을 느끼는지 여부와는 상관 없이 죽음의 무게는 끝까지 주인공을 뒤따라오고, 이를 카인과 십자가를 진 예수에 빗댄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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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민음사 펴냄)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윤리의식, 이런 거창한 다짐들이 없어도 어떠한 순간의 측은지심이나 동정은 타인의 삶에 빛을 비추고 나의 삶의 궤적에 그들을 녹여낸다. 서너살 때 철로에서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문주라는 이름으로 1년간 같이 지낸 후 고아원을 거쳐 프랑스로 입양된 나나는, 자신의 생모와 위탁하여 돌봐준 기관사를 찾는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서영의 제안을 받고 한국 땅을 밟는다. 어려웠던 80년대, 미군 기지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홍등가가 즐비했던 이태원 해방촌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삶의 실타래가 풀린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고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기 때문에, 이름은 나의 탄생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단서이다. <단순한 진심>은 한국의 이름에서 볼 수 있는 한자말과 돌림자를 가지고 이를 따스하게 표현했다. 쉬운 단어들을 가지고 섬세한 감정, 특히 외로움을 탁월하게 잡아내는데, 문장 하나하나에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담겨 있어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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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새잎 펴냄)
HBO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고 관심이 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사고를 겪은 주민, 해체작업자, 소방대원, 연구원, 정치인 등 500여 명을 10년에 걸쳐 인터뷰한,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구술 역사다. 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사람들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등으로 나뉘어졌지만 체르노빌을 겪은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의 사람들)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저마다 강도만 다를 뿐 같은 고통을 현재까지도 공유하고 있으므로... 체르노빌레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원래 살던 방식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살아갈 수 없어 방사능이 잔재하는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일찍 늙기에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상이 없는지부터 확인하는 체르노빌 이후의 삶의 방식이 너무 슬프다. 그렇기에 책의 본문 뒤에 실린, 자본으로 인류 최악의 재앙을 무용담 삼아 체험해 보는 체르노빌 관광상품을 소개하는 벨라루스 신문사의 담담한 어투가 더욱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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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물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펭귄북스 펴냄)
보물지도의 X 표시, 흑점, 앵무새를 얹은 외다리 사내 등 우리가 생각하는 '해적 컨텐츠'의 원류라고 볼 수 있는 소설. 디즈니 애니메이션 <보물섬>, 오다 에이이치로의 만화 <원피스>, 학생 때 했던 게임 <대항해시대>까지, 이미 내 유년기는 더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컨텐츠로 가득했어서 소설 <보물섬>을 읽고 당대 독자들이 느꼈을 모험심이 끓어오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해적'하면 으레 떠올리는 요소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 과연 해적 장르의 포문을 연 소설이구나 싶었다. <보물섬>은 짐 호킨스의 성장소설이자 보물에 눈이 멀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경고한 소설인데, 시대상을 반영하듯 기독교적 가치가 드러나는 '건전한 맛'의 고전이라 이 점이 또 재미있다.
www.amazon.com/Treasure-Island-Penguin-Classics-Stevenson/dp/0140437681
8. 여자짐승아시아하기 (김혜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김혜순 시인의 여행기인데, 소설인지 여행기인지 현실인지 상상 속인지 알 수 없게 마구 뒤섞이는,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전개가 특징이다. 여자로 규정 받고 아시아인으로 규정 받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능동태로 '여자하고', '짐승하고', '아시아하기' 위해 떠난 여행으로, 도시화가 손을 뻗치지 못한 복작복작하고 낮은 곳들을 다니며 각 지역의 여성을 다룬 신화들과 자신 내면의 가장 날것의 여자의 목소리를 찾는다. 이 시인의 시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묘사가 정말 날것의 생생한 그것이라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사막 한 가운데에 선 것처럼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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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멀베이니 가족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창비 펴냄)
https://bibc.tistory.com/74
10.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 봄알람 펴냄)
최근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 이후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책이다. 온갖 성적대상화가 덕지덕지 붙은 '수행비서'가 아니라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비정규직이었던 노동자로서의 김지은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성범죄는 '영혼의 살인'이라는 정확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비유 대신에 신체의 안전을 위협 받지 않고 건전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상사한테 폭행이나 폭언을 당한 부하직원에게 왜 그러고도 출근했냐고 하지 않듯, 아직도 성범죄만은 '둘이 좋아서 했는 지 어떻게 아냐'며 사적 영역으로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직장 내 성범죄 또한 노동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며 피해자들 또한 근로자이고 다시 안전한 근무환경으로 복귀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임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겠다. 정말 많은 이들의 용기가 되어줬지만 그만큼 심한 후유증을 앓은 김지은씨가 하루라도 빨리 정당한 근로와 보수를 받는 안전한 일터로 돌아가시기를, 폭로 이전의 삶을 되찾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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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왓치맨 디럭스 에디션 (데이브 기븐스 & 알란 무어 지음, 시공사 펴냄)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를 보는데 원작 설정이 잘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원작의 그 음울한 분위기에 취해있던 듯 한데,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까 냉전 당시의 사회상과 불안을 어떻게 작품에 녹여냈는지 좀 더 이해가 잘 돼서, 명작이 괜히 명작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픽 노블 <왓치맨>의, 제 손으로 종말을 향한 시곗바늘을 밀어올리던 인류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각이 좋았던 만큼, 드라마 <왓치맨>에서 이제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고 나아가야 할 때라는 희망을 내포하는 메시지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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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펀 홈 (앨리슨 벡델 지음, 움직씨 펴냄)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후 4개월 뒤 자살한 아버지가 알고 보니 클로짓 게이였다는,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자전적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그래픽 노블. 작중 인물들과 그 관계를 제임스 조이스, 헨리 제임스 등의 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해서, 언급된 소설들을 읽고 나서 한 번 더 보면 이해도가 훨씬 높아질 듯 하다(너무 읽은 게 없어서 무지렁이가 된 기분이었음). 변명의 여지 없이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짓을 했고 스스로와 가족들의 삶을 무너뜨렸지만,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던 브루스 벡델을 담담하게 고찰하며 끝내는 용서하는 저자의 회고록. 자신에게 억압된 여성성을 투영하던 앨리슨의 유년시절부터 딸의 커밍아웃 이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던 대학생 시절, 찝찝한 뒷맛만을 남긴 자살 이후까지 앨리슨이 기억하던 브루스의 모습과 그에 영향 받은 앨리슨의 삶의 궤적을 정신 없이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장에서 앨리슨이 내린 결론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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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지음, 폴라북스 펴냄)
기분과 욕망마저 다이얼을 맞춰 조절할 수 있는 무감한 시대, 식민행성에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은 더욱 정교하게 사회적 행동을 모방해서 인간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해 진다. 고도로 발달한 지능을 갖춘 신종 안드로이드 넥서스-6들이 윤리를 토대로 한 감정이입 정도를 측정해서 안드로이드를 감별하는 시험마저 빠져나가는 가운데,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인간대로,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이드대로 고독을 느끼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데 점점 그것이 어려워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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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포스트 코로나 사회 (김수련 외 지음, 글항아리 펴냄)
의사, 간호사, 종교인, 장애인 인권운동가 등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2~5월, 코로나19 초기 확산 단계의 패닉을 겪으며 떠오른 단상을 엮은 책이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포스트 코로나의 양태는 어떨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비전을 제시하는 류의 책은 아니고, 코로나19가 덮치면서 각자의 삶과 분야에서 어떠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코로나19와의 싸움의 최전선, 또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코로나19의 영향이 어땠는지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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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문화예술경영 (박신의 지음, 이음스토리 펴냄)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예술경영'의 성공적인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국내 예술경영 정책의 장단점을 짚어본다. 저자는 특히 폐산업 시설 같은 곳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들어가 지역 사회의 예술 향유에도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 아트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인 지 선별해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향유층을 확대하는 문화의 민주화보다, 예술의 창작 주체 자체를 일반인들로 구성하는 문화민주주의 얘기가 언급되는데, 이 개념은 좀 더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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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 창비 펴냄)
제목 그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그려낸 단편소설집이다. 네이트판을 구경하듯 소재가 재미있고 술술 읽히지만, 아무래도 현실 속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내용들이라 흥미가 덜했다. 나는 좀 더 비유적인 내용이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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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로나 이후의 세계 (제이슨 솅커 지음, 미디어숲 펴냄)
저명한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가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 책. 일과 교육이 전반적으로 온라인 베이스의 원격으로 전환되면서, 화석연료의 중요성과 기존 도심에 집중되어 있는 주택과 사무공간의 '집값'마저 변동이 생길 거란 점이 흥미로웠다. 동시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재택근무가 가능할 것이란 점도... 또한 비슷한 사람들끼리 묶는 SNS 때문에 허위합의현상 등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의 파급력이 더더욱 커질 것이란 점도 주요하다. 원격근무를 시작하면서 특히나 온라인 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SNS의 해악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현대사회에서 배제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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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엔터테인먼트 산업 혁명 (김동하 지음, 웰북 펴냄)
K-POP, K-드라마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콘텐츠가 아니라 투자자의 측면에서 분석한 책. 다른 무엇보다도 K-POP이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이 책은 이를 유투브 전성시대와 맞물려 보고 있고 '한류만의 콘텐츠' 특성을 찾기 보다는 유투브, 아마존 등 범국가적 유통의 본격화와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이미 기반이 마련되어 있던 점에서 K-POP의 성공 이유를 찾아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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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강화길 외 지음, 은행나무 펴냄)
시대와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하는 매우 좁은 울타리 안에서, 여성들이 가지게 된 불안, 망상과 때로는 자기파괴적 충동의 근원을 좇아간 단편집. 비슷한 처지와 환경으로 인해 누구보다 가깝고 잘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이면서도 최악의 몰이해와 증오의 대상이 되고마는 모녀 사이를 다룬 <산책>과,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싹한 고딕 스릴러 <이전의 여자, 이후의 여자>, 언니의 자살 시도 이후 퍼즐을 맞추고 부수기를 반복하듯 현재의 순간만을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 <피스>가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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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나는 어떻게 너를 잃었는가 (제니 블랙허스트 지음, 나무의 철학 펴냄)
<곤 걸> 이후로 한창 붐이 불고 있는 여성 작가의 심리/범죄 스릴러. 본인은 기억이 없으나 생후 12주 된 아들을 살해한 죄로 복역 후 새로운 신분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나이 먹은 아들의 사진이 배달되어 온다는,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소재만큼이나 오싹하고 흡인력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심리 스릴러들 대부분이 미스터리가 밝혀지고 나면 치정이 사건의 발단에 있는 경우가 많아 김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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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지음, 아작 펴냄)
인류는 비극을 반복하며 최악의 결말로 달려가지만, 그 가운데서도 선한 희망은 이어진다. 끔찍하고 비정한 세계 속에서도 인물들이 참 다정하다. 한 편을 꼽을 수 없을만큼 수록된 단편들이 다 재미 있었다. 독특한 설정 속에서도 인물들의 동기나 결심이 제일 기억 속에 남았고... SF 소설의 스케일이 요즘에는 일상 소설과 구분 안 될 만큼 작아졌는데 통 크게 다른 세계를 창조해내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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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피프티 피플 (정세랑 지음, 창비 펴냄)
정세랑 작가가 인간 군상을 그리는 방식이 너무 좋다. 사회를 위협하는 악인의 내면을 흥미롭게 묘사하는 소설을 종종 보는데 <피프티 피플>은 선한 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악은 사실 지루하고 선이야말로 풍부하고 흥미롭다고 했던 시몬 베유의 말처럼 저마다의 상황을 살아가는 '보통'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고 마음을 울리는지. 주인공이 50명이나 되는 옴니버스식 장편소설 형식도 매우 새롭다. 매 에피소드 새로운 환자가 등장하는 장편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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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지음, 민음사 펴냄)
초반에 하차한 드라마랑 달리 이렇게 취향에 잘 맞는 책이었을 줄이야... 정세랑 작가는 꾸준히 다정한 사람들을 그리고 있고 지쳤지만 포기하지 못 하는 안은영에게 많은 위로를 받는다. 드라마에서 젤리가 집중되어서 젤리가 큰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XXX홀릭이나 여고괴담에 가까워 보였음. 주인공들이 한 순간을 살아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이후 몇 년씩 계속 삶을 이어갔음을,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꽉 닫힌 해피엔딩임을 알려주어서 더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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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One Life (Megan Rapinoe, Emma Brockes 지음, Penguin Random House 펴냄)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메간 라피노의 자서전. 여남 동일임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고(미국 여자축구팀은 세계 1위지만 남자축구팀은 35위...? 인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이랑 상금, 컨디션 등이 엄청 차이 난다는 듯) 여성들이 좀 더 보란듯이 성공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만큼 자서전의 서문에도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있는 거라고 단언해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자서전을 잘 안 읽어서 원래 이런 지는 모르겠는데 매우 상세한 어린 시절과 마약 사범으로 꾸준히 복역 중인 오빠 얘기, 소문으로만 돌았던 애비 웜백과의 연애 얘기... 등 TMI를 너무 많이 알게 된 기분. 인생의 각 챕터를 굵직한 에피소드로 소개하고, 콜린 캐퍼닉을 따라 국가 제창 때 무릎을 꿇은 일부터 시작하여 커밍아웃, 미국 축구협회 고소 및 커리어 최고 전성기를 맞은 2019년 월드컵까지 자신이 누누히 얘기해 왔던 이야기 -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그 영향력을 주위로 펼쳐라. 보다 낮은 위치의 이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해 주어라 - 를 하고 있다. 책이 재미 있었냐와는 별개로 단연 21세기 미국의 원더우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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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난다 펴냄)
지금까지 읽었던 로맨스 소설 중에 제일 만족스럽다. 역시... 기분 쎄한 거 없이 남자랑 연애를 하려면 외계인 정도는 돼야 하는 것 같다. 우주적 스케일로 달달해서 내내 미소를 띄우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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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플레인 센스 (김동현 지음, 웨일북 펴냄)
피로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항공기와 항공법규의 역사를 훑은 책. 사고가 나면 고치고, 사고가 나면 고치고의 반복이었다. 자국에서 탈출하여 새 삶을 꿈꾸며 비행기 휠 밑으로 기어들어갔다가 출발하자마자 랜딩기어에 끼어 사망하거나, 비행 내내 기절한 채로 버티다가 랜딩할 때 해치가 열리며 어이 없게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많았다는 게 안타깝고 기억에 남는다. 스튜어디스가 정말로 남성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기내 서비스의 일환으로 처음 도입된 거라는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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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하다가 급... 15년 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지금 읽어도 어찌나 모럴이 없고 흥미진진한 지 내 어릴 적 취향은 신화가 다 버려 놓은 게 확실하다. 당시 유행했던 신화를 통해 배우는 인문학^^; 교양서로 쓰여진 책이라 매 이야기가 교훈적으로 끝나는 거나 조개 상징 같은 거에 너무 집착하는 저자가 징그러웠지만... 여전히 재미 있었다. 북유럽 신화도 그랬지만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말도 안 되게 재미있고 많아서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것 같게도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신화 책을 보고 나면 단어의 어원부터 시작해서 하늘 위 별자리까지 신화가 아닌 게 없다... 그리스 놈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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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정혜윤 작가는 방송 PD로서 항상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가운데서 사람의 선한 의지를 찾아내는 방송을 많이 기획했는데 이 책은 쌍용 자동차 해고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자신이 가장 취약할 때 어째서 자신의 생계가 아닌 동료, 책임, 연민 등을 선택했는지, 해고자들 각각의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에게서 인간의 선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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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로마의 일인자 1~3 (콜린 매컬로 지음, 교유서가 펴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고증 오류 및 잘못된 역사관 등으로 재평가 받을 때 반대급부로 부상한 역사소설 <마스터즈 오브 로마>의 1부. 총 7부 21권이라는 미친 볼륨에도 전 시리즈를 다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1부는 매우 부유하지만 로마가 아닌 이탈리아인 출신의 마리우스가 율리우스 집안과 결혼하고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6번의 집정관을 지내면서 로마의 일인자로 부상하는 내용을 다룬다. 마리우스와 반대로 고귀한 파트리키 귀족 계급이지만 무산자 출신의 젊은 술라도 율리우스 집안과 결혼하고 마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정치계에 입분하는데, 2부에서는 나이 든 마리우스와 대립하며 집정관직을 노리는 술라의 서사가 진행되는 듯. 마리우스와 술라 둘 다 범인은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재능 넘치는 사람이라, 뛰어난 지략으로 전장과 원로원에서 승리할 계략을 세우고 착착 풀려나가는 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데 고대 로마에서 여자로 태어나는 건 절대 피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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