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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거라 시즌 1, 2, 3 스포일러를 뿌려댈 예정입니다. 끝까지 범인을 알 수 없는 전개가 매력적인 작품이니 전 시즌 끝내시고 보시길 바랍니다.
시즌 1: 비밀에 싸인 마을
영국의 외딴 바닷가 마을 브로드처치, 어린 소년 대니 라티머의 시신이 해변가에서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브로드처치 경찰서의 엘리 밀러 경사는 마을에 새로 부임한 알렉 하디 경위와 함께 수사에 착수하고, 밀러 경사는 경위로 승진이 확실시되던 차에 굴러들어 온 하디 경위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항상 똥 씹은 표정을 한 하디 경위 또한 불명예스러운 과거가 있어 보인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대니 라티머의 살인사건은 마을 모두에게 끔찍한 상처를 남기는데...
브로드처치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절벽이 있는 영국의 바닷가 마을로,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알 만큼 작은 마을이다. 프라이버시랄 게 없는 마을이라 범죄라고 해봤자 소매치기, 빈집털이 등 경범죄가 전부였던 브로드처치에, 어린 소년이 살해당하는 전례 없는 강력 범죄가 일어나 마을 전체가 긴장과 불신에 휩싸인다. <브로드처치>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오지랖 넓고 쾌활한 밀러 경사와, 일전에 맡았던 '샌드브룩 사건'을 어이 없는 실수로 해결하지 못해 불명예를 안고 브로드처치로 부임한,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하디 경위가 팀을 이뤄 대니 라티머 사건을 조사하는 내용을 그린다.
위에 둘이 붙어있다고 러브라인 같은 걸 기대하면 안 된다. 밀러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조신한 남편에 아이 둘의 엄마고, 하디는 전부인과 슬하에 딸이 하나 있다. 남녀 콤비가 메인을 맡으면 그게 수사 드라마든 의학 드라마든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단편적인 인간관계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브로드처치>의 큰 매력이기도 하다.
'브로드처치 사람들은 이런 짓 안 해요.' 시골 마을 하면 떠오르는 순박한 마음씨와 평화로운 분위기 - 살인 사건을 처음 접하고 브로드처치의 주민들 대다수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로드처치는 거짓말쟁이들의 마을이다. 정말이지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건 브로드처치가 특수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게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 할 지라도 털어놓지 않는)비밀은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다이내믹을 심도 있게 다뤘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브로드처치>의 매력은 이러한 각자의 사정과 비밀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용의자 후보들이다. 수사가 진행될 수록, 생각지도 못한 용의자가 튀어나와 뒷통수를 후려친다.
시즌 1의 또 하나의 큰 줄기는 라티머 가족이다. 대니가 살해당할 때 바람을 피우고 있던 마크는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하고, 베스는 대니의 죽음이 잊혀질까봐 인터뷰를 하거나 후원행사를 열려고 하지만, 자극적인 소재만을 좇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상처 입는다. 클로이는 동생의 죽음 이후 더욱 방황하며 겉돈다. <브로드처치>는 대니의 죽음 후 유가족들이 괴로워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조금 상처가 덮였나 싶으면 가슴을 후벼파는 상실의 고통을 진실되게,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브로드처치> 시즌 1은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끝에(결코 과장이 아님), 엘리 밀러의 남편 조 밀러의 자백과 투옥으로 끝난다. 마을을 불안에 떨게 한 범인은 잡혔으나, 라티머 가족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엘리는 끔찍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시즌 2: 결말은 시작한 곳에서 끝난다
대니 라티머를 살해한 조 밀러는 별안간 무죄를 주장한다. 라티머 가족은 잘 나가던 변호사였으나 저택에서 은둔하던 조슬린에게 변호를 요청하고, 조슬린의 옛 제자이자 조슬린이 아들의 변호를 맡아주지 않아 적의를 품은 샤론이 조의 변호를 맡는다. 한편, 샌드브룩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리 애시워스가 영국으로 돌아오고, 하디 경위는 밀러 경사와 함께 다시금 샌드브룩 사건의 전모를 좇는다.
시즌 1이 브로드처치 마을에 거대한 균열을 내고 엘리를 고독으로 내몰았다면, 시즌 2는 시즌 1에서 이따금 플래쉬백으로만 등장했던 '샌드브룩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린다.
샌드브룩 사건은 어린 소녀 피파 길레스피와 피파의 사촌이자 베이비시터 리사 뉴베리가 살해 및 실종된 사건으로, 피파의 시신은 하디가 강물에 떠내려온 것을 발견했고 리사의 시신은 아직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리 애시워스의 차에서 사건이 발생한 당일 리와 피파가 함께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 - 피파의 펜던트를 발견하였으나, 하디의 차에 보관했던 펜던트가 도난 당하면서 사건은 미제로 종결된다. 실은 당시 하디의 파트너이자 아내인 테스가 동료 경관과 바람을 피우다 도난 당했지만, 하디는 딸 데이지와 아내의 커리어를 생각해 자신이 뒤집어쓴다. 시즌 1 후반부에서 하디가 브로드처치 로컬 신문사를 통해 전말을 밝히면서 누명은 벗었으나, 해결하지 못하고 끝난 샌드브룩 사건은 여전히 하디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조 밀러가 잡히고, 리의 아내 클레어를 남몰래 보호하며 샌드브룩 사건을 계속 수사하고 있던 하디는 밀러 경사를 끌어들인다. 밀러의 합류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리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던 클레어도, 그저 아내를 되찾으러 왔을 뿐이라는 리도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시즌 2의 한 줄기는 조 밀러의 재판, 그리고 다른 한 줄기는 샌드브룩 사건의 수사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법의 심판만을 기다리고 있던 라티머 가족은 조 밀러가 무죄를 주장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또 한 번 슬픔에 무너진다. 언론과 조의 변호사 샤론은 라티머 가족을 가만 두지 않고, 대니의 죽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태어나면서 다시 한 번 관계의 회복을 약속했던 마크와 베스도 각자의 슬픔에 파묻혀 점점 소원해진다. 법정에서 새로이 드러나는 진실, 그리고 남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볼 수 없을만큼 감정적으로 궁지에 내몰린 베스가 슬퍼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특히 마음 아프다.
샌드브룩 사건은 피파의 친부 리키, 리, 그리고 클레어가 모두 공범이었음이 드러나며 종결된다. 믿었던 클레어에게 배신 당했지만, 하디는 끝끝내 샌드브룩 사건을 해결하고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마음 한구석에 들어앉아 계속 하디를 괴롭혔던 샌드브룩 사건이 해결되고, 미뤄왔던 심장 수술을 받으면서 하디는 한 발짝 나아가 어떤 의미로 보면 인생 제 2막을 시작하게 된다.
시즌 3: 최종장
조 밀러의 재판이 끝나고 2년 후, 런던으로 돌아갔던 하디는 브로드처치로 돌아온다. 그로부터 1년 후, 하디와 밀러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낯선 남자에게 강간 당한 트리시 윈터먼의 범인을 쫓는다. 충격에서 회복되며 트리시의 기억은 서서히 돌아오지만, 파티에 참석한 용의자는 50명이 넘는다. 베스는 여성 지원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별거 중인 마크는 아들의 죽음에서 좀체 헤어나오지 못한다.
시즌 1, 2에서 밀러와 하디의 이야기가 각각 (어느 정도)종결되고, 시즌 3에서는 또 다른 사건, 트리시 윈터먼의 성폭력 사건을 심도 깊게 다룬다. 대니 라티머 살인사건이 종결되고 3년 후, 50대의 마을 주민 트리시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팔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강간을 당하고, 브로드처치는 다시 한 번 불안한 기운에 휩싸인다.
시즌 3의 한 꼭지는 성폭력 피해자 트리시가 폭행 이후 어떤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주변인들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반응하는지 따라간다. 딸이 있는 50대의 여자지만 여러 남자와 자고, 일종의 '무리의 여왕벌'이었던 트리시의 입체적인 캐릭터와 관계 덕에, 시즌 3도 거짓말에 거짓말을 반복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삶이 어땠던 간에 성폭행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평생 가는 상처를 남기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이고, 성폭행은 성욕이 아니라 권력과 통제욕에 있다는 걸 확실히 한다. 시즌 후반부, 트리시를 밖으로 이끌어준 딸과 상담해준 베스, 그리고 연대를 표한 브로드처치의 여성들 덕에 결국 트리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본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희망적으로 암시한다.
시즌 3에서 지난 시즌들에 비해 다르다고 생각한 점은 시즌 3의 가해자가 완전한 '악'이었기 때문이다. 시즌 1에서 비밀리에 대니와 만남을 갖다가 마음을 거부 당하자 분노하여 대니를 살해한 조나, 욕망하던 리사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보고 리사를 폭행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리키나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기 위해 피파를 살해한 리는 물론 악인이지만, 캐릭터가 다층적으로 조형되어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라든지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버린 이질적인 존재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3의 가해자 레오는 소외되었던 마이클을 그루밍하고, 싫다는 마이클을 억지로 가담시켜 트리시를 강간하도록 만든다. 강간을 '그저 섹스일 뿐이다'라고 하는 레오는 자극적인 포르노와 윤리의식 결함이(즉,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처럼 보인다.
라티머의 가족들은 3년의 세월 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낸다. 여성 지원센터 일을 시작한 베스는 대니를 묻어두고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하나, 마크는 대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조 밀러를 죽여 매듭을 짓고 싶어한다. 3년이면 본인들은 몰라도 주위 사람들은 충분히 '그쯤 되면 잊고 새출발하라'고 느낄 만한 시간이다. 파도에 잠기듯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크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하지만 피날레는 정말 멋지고, 시즌 1~3을 달리면서 꼭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베스와 클로이, 대니가 죽고 난 후 태어난 동생 엘리자베스와 엘리, 엘리의 아들 톰과 프레드가 함께 바닷가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베스가 자신에게 뿜어내는 억울할 정도의 증오에도 끊임 없이 베스의 곁에 있으며 다잡아줬던 엘리. 그리고 베스가 일어나려 할 때마다 고통을 줬던 마크와 엘리의 삶을 망가뜨린 조는 곁에 없다. 뒤로 남겨둘 것은 남기고, 앞으로 나아간 여자들의 연대.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디의 가정사도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딸에게 미안해서 전전긍긍하던 하디는 밀러의 조언에 따라 좀 더 이기적으로 굴게 된다. 엄마와도 사이가 안 좋고, 원래 있던 학교에서 문제가 있어 브로드처치로 와서 함께 살게 된 데이지가 브로드처치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 해 다시 엄마에게 가려고 하자, 공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데이지를 괴롭히던 남학생들을 호되게 혼내고, 데이지에게 브로드처치에 남아 더 버텨보라고 하며 런던행 기차표를 찢어버린 것. 시즌 2에서 엄마와 살기 싫어 이모 집에서 지내며 범죄자 아빠를 편들던 톰에게 전전긍긍하던 밀러도 시즌 2 후반부에서 '넌 오늘부터 짐 옮겨서 나랑 살 거고, 난 네 엄마니까 그래도 돼!'라고 카리스마로 아들의 의견을 묵살 후 약간의 독재정치로 가정의 평화를 이룬 바 있다. 아이의 의사를 심하게 존중하던 밀러와 하디가 가정의 평화를 찾는 방법이 묘하게 한국적이라 웃겼다.
<브로드처치>는 3개 시즌밖에 되지 않는 짧은 드라마지만, 결코 적지 않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고통을 겪고, 이겨내려 발버둥치고, 나름의 결말을 맞는 과정들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보다 보면 진실을 말하는 놈은 한 명도 없고 브로드처치는 하나 같이 거짓말쟁이에 가정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 투성이라서(이놈의 불륜쟁이들!) 인류애가 뚝 떨어지다가도, 결국에 인간은 다른 인간을 향한 애정과 믿음을 통해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을 혐오하는 베스를 지지해주고 곁에 있어준 밀러, 라티머 가족을 생각하는 조슬린의 의지, 피파와 리사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하디 등등. 트리시 윈터먼의 사건을 해결한 밀러와 하디는, 내일 만날 것을 기약하며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간다. 뼛속까지 시린 바닷물을 맞은 듯 시련은 예상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문득문득 슬픔이 올라오고, 또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기괴한 절벽과 황량한 음악, <브로드처치>는 우울이 드리운 삶 속에서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위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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