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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인 퍼 Venus in Fur
일자: 2019.07.24 ~ 2019.08.18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출연: 임강희, 이경미, 김대종, 김태한
'마조히즘'이란 단어의 어원이 된 자허마조흐의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연극으로 각색 및 연출을 맡은 토마스는 여주인공 벤다 역의 오디션을 보지만, 하나 같이 천박하고 섹시하지 않다며 실망한다. 밤 늦게 책의 주인공과 이름이 똑 같은 무명배우 벤다가 뛰어들어오고, 토마스는 품위 없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데다 오디션 명단에도 없던 벤다를 돌려보내려 하지만 벤다는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면서까지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한다. 어거지로 시작된 오디션, 벤다는 벤다 폰 두나예브, 토마스는 상대역 세베린 폰 쿠솀스키를 맡아 대본을 읽기 시작하고, 토마스는 벤다에게 점점 빠져드는데...
<모피를 입은 비너스(Venus in Furs)>는 1870년 출간된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드 폰 자허마조흐의 소설로, 자허마조흐가 쓰려던 연작 시리즈 <카인의 유산>의 첫 번째 작품이 될 예정이었다(총 6편 예정이던 <카인의 유산>은 두 번째 시리즈가 출간된 후 자허마조흐가 집필을 포기했다). 여성의 지배와 사도-마조히즘을 다룬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자허마조흐가 신인작가 패니와 자신의 실제 관계를 바탕으로 저술한 책으로, 강인한 여성에게 지배 당하고 싶어하는 쿠솀스키가 이상적인 여인 벤다에게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해달라고 제안하고, 거부하던 벤다는 이내 가학 욕망에 이끌린다. 쿠솀스키는 그레고르라는 가명을 쓰고 벤다의 시종 역할을 하며 함께 피렌체로 여행하고, 벤다는 3명의 아프리카 여인들을 동원해 쿠솀스키를 모욕하고 지배하게 한다. 한편 벤다는 알렉시스라는 사내에게 지배 당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벤다의 배신에 상처 받은 쿠솀스키는 지배 받고 싶은 욕망을 상실한다.
한마디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SM 포르노 소설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인간 내면의 욕망 따위를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니라 포르노 소설에 불과하다고, 그걸 쓴 놈도 연극으로 올리는 놈도 대중 상대로 빤스 내리는 일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연극 <비너스 인 퍼>의 메세지다. 품위 없고 입도 험한 벤다는, 토마스의 선입견과 다르게 연기에 돌입하자 여신 같은 위엄과 품위를 뽐낸다. 그리곤 토마스를 한껏 더러운 판타지에 몰입하게 만들어놓은 후, 찬물을 끼얹는다. 이거 성차별인데? 이건 여자한테 죄를 다 뒤집어씌우는 거에요. 쿠솀스키는 당신이야.
토마스가 누군가. 하고 많은 소설 중 굳이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 감명을 받아서 그걸 또 연극으로 올리겠다는 례술가다. 자신의 판타지에 꼭 맞는 (여)배우를 찾아 헤매고, 그런 배우를 발견하게 되면 무대 위는 물론 백스테이지에서도 벤다와 다른 개성은 일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토마스의 대사 한, 두마디만 들어도 토마스의 캐릭터 파악은 금방 끝나고, 그건 아마 우리 주위에 그런 남예술가를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개개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이상적인 여신을 숭앙하고, 어떻게 봐도 SM 포르노인 소설에 굳이굳이 인간의 욕망 어쩌구 하는 주제의식을 갖다붙이며, 연출가-배우의 관계를 주종관계마냥 본다. 우린 다 느낀다: 아, 저 놈은 토종이구나!!
토마스는 쿠솀스키와 똑 같은 욕망을 갖고 있으며, 쿠솀스키에게 자신을 이입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니 열정이니, 갖다붙일 그럴 듯한 이유를 준비해두고는 그저 무대 위에 보고 싶은 야동을 실제 사람들을 데리고 틀어놓는 것이다. 원하는 (여)배우를 연출이라는 이름 하에 휘두르고 벗기고 주무르는 것은 덤이다. 벤다의 메시지는 확고하다: 정신차려 너 그거 포르노야!
'발칙한', '규범을 깨부순', '충격적인' 따위의 수식어가 붙은 공연/영화 등에서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누드 연기를 하고 강간 당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그 과정에서 인격을 말살 당했는가?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사전 합의되지 않은 강간 신, <마더>의 마찬가지로 사전 합의 없이 추행하던 장면. 혼을 갈아넣어서 아주 그냥 스펙터클하게 여성 대상의 강간/매음굴/폭행 장면을 연출하는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엘리자벳>(여자주인공인데!), 이보 반 호프의 수많은 작품들 - <파운틴헤드>, <헤다 가블러> 등등. 보다 보면 그냥 연출이 보고 싶어서 넣었나? 싶은 장면들. 후반부로 가면 토마스는 벤다 역을 맡아서 자기 입으로 벤다에게는 죄가 없으며 쿠솀스키와의 관계는 합의된 관계가 아니었다는 대사를 줄줄 읊으면서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른다. 책상에 묶여 하일 아프로디테를 외치면서도 나한테 왜 이래< 밖에 못 느꼈을 것이다. <비너스 인 퍼> 보여주고 싶은 남작가 남연출들 너무 많은데 1) 일단 남관객이 압도적으로 적어 정작 봐야될 사람들이 이 극을 안 보러 오며 2) 봐도 토마스랑 똑 같이 자기네 얘긴지 모를 것이다. 친절하게 니네가 하는 것은 포르노이며 딸은 집에서나 치고 돈 받고 관객들한테 보일 생각 하지 말라고 자막 띄워줘야 할 듯.
<비너스 인 퍼>는 2012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고, <한니발>로 유명한 휴 댄시와 연극, 영화배우 니나 아리안다가 주연했다. 토니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만 받고 극본, 연출, 작품상 못 받은 건 심사위원들이 다 남자여서는 아니었을까^^?
<비너스 인 퍼>의 작가는 데이빗 아이브스로, 개빻은 오스트리아 국민뮤지컬 <Dance with the Vampires>(심지어 원작영화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 각색한 사람이라 좀 상처 받았는데 <비너스 인 퍼>가 더 최신작이라 그 뒤로 정신 차렸나보다고 생각하기로. 물론 <비너스 인 퍼>는 남작가의 한계도 분명 느껴지는 작품이다. 연출의도는 알겠으나 벤다가 성적으로 어필하는 의상을 입고 그렇게 행동하며, 실재하는 개인보다는 주인공을 징벌하러 온 여신이나 관념체처럼 느껴진다. 잘못된 소원을 빈 추잡한 신도를 밟아주러 온 여신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 연출이 정말 좋긴 했지만, 벤다의 조형은 여러모로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라고 이름 팔며 무대에 자기 욕망 전시하는 남예술가'를 콕 짚어서 비판하는 작품은 처음이라 매우 신선했다. 여성서사극을 볼 때와는 또 다른 통쾌함이 있음. 듣는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정확하게 뭘 비판하는지 짚어주는데 이걸 보고도 벤다 힐 높이가 아쉽다 따위의 후기를 남기는 사람도 있다 하니 정말 큰일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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