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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던 발레 '1984' (Northern Ballet: 1984)
안무/연출: Jonathan Watkins
음악: Alex Baranowski
디자인: Simon Daw
조명: Chris Davey
영상: Andrzej Goulding
주연: Tobias Batley(윈스턴 스미스 역), Martha Leebolt(줄리아 역) 외
극단적인 전체주의 국가를 다룬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가 발레로 재탄생했다. 코로나19 록다운을 맞아 영국 노턴 발레단에서 무료로 공개한 <1984>는 2015년 초연 당시의 공연 실황을 담았다. 아무래도 친숙한 현대 작품을 소재로 삼은 발레라 더 관심이 갔고, 개성이 말소된 전체주의 사회를 표현할 압도적인 군무가 기대되었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빅 브라더는 무대 중앙에 달린 스크린의 두 눈으로 표현된다(빅 브라더를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이제 흔한 방식이기는 하다). 소비에트 연방 노동자를 연상시키는 똑 같은 옷을 입고, 스크린을 바라보며 빅 브라더를 찬양하는 제스처인 삼각형을 손으로 그린다. 감시자 오브라이언(위 사진에서 혼자 파란 조끼를 입은 남자)은 항상 사람들 속에 섞여 끊임 없이 감시하고 경고한다.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부(Ministry of Truth)에 근무하는 당원으로,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오세아니아가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가는 것처럼 정보를 조작하는 일을 한다. 윈스턴은 당원이지만 현 상황에 부조리를 느끼며 저항하고 싶어하고, 채링턴 씨의 가게 뒷편에 좋아하는 그림, 오너먼트 등을 모아둔다. 심지어 윈스턴은 일기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불온한 행위까지 저지르게 된다. 윈스턴은 노턴 발레의 간판 스타인 토비어스 바틀리가 맡았는데, 같은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뭔가에 도취된, 화난 듯한 얼굴들 속에 혼자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어 윈스턴이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1막은 빅 브라더를 찬양하는 당원들과 윈스턴의 개인적인 반란이 조금은 지루하게 교차되며 반복된다. 기계음이 섞인 음악에 맞춰 파란 옷차림의 댄서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기대했던 만큼 전체주의 사회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냈지만, 몇몇 장면은 윈스턴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진행시키기 위해 의무적으로 삽입한 느낌이라 전개에 아무 역할을 못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같은 당원인 줄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개인적이고 소심했던 윈스턴의 반란에는 전환점이 찾아온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개성이라곤 없던 옷을 벗어 던지고 기계(스크린)와 대비되는 자연을 배경으로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나눈 후 윈스턴과 줄리아는 관객들을 한 번 어깨 너머로 쳐다보는데, 텔레스크린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는 빅 브라더처럼 관객들 또한 윈스턴과 줄리아의 개인적인 행위를 몰래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듯 하다.
채링턴 씨의 가게 뒷편에서 잠깐의 단꿈을 꾸던 줄리아와 윈스턴 앞에 비밀 경찰들이 나타나고,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에게 고문을 당한다. 불온 사상을 버리고 빅 브라더를 찬양하도록 끔찍한 고문을 당한 윈스턴은 결국 빅 브라더에게 굴복하고, 윈스턴이 일하던 진실부에서 그랬듯 윈스턴 스미스의 이름은 그의 죽음과 함께 기록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1984>는 컨셉적으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공연을 보지 않고 프로덕션 사진만 봐도 전체주의 국가를 표현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낼 수 있을 무대와 의상(긴장감 넘치는 음악까지), 여러 명의 댄서들과 스크린으로 표현한 빅 브라더 장면은 왜 <1984>를 발레로 만들고 싶어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소설 <1984>에서 보였던 정교한 장치들 - 사고 자체를 단순화시키는 신어(新語), 쌍방향으로 감시 당하는 텔레스크린, 윈스턴이 읽은 금서나 빅 브라더에게 반란을 꾀하는 지하조직 모두 오브라이언이 파놓은 교묘한 함정이었다는 반전 등은 거의 표현되지 않고, 윈스턴이 불온한 사상을 품는다 → 줄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 빅 브라더에게 잡혀가 고문 당하고, 끝내 굴복 당하고 죽는다는 간추린 서사에 집중한 점은 아쉽다. 빅 브라더가 국민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도 감시하는/감시 당하는 것처럼 표현해줬으면 더 좋았을 듯 하다.
<1984>의 무료 공개 기간은 끝났지만 국내에도 블루레이를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구매해서 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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