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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공연기간: 2019년 6월 14일 ~ 7월 7일 

공연장: 콘텐츠 그라운드

제작: 창작집단 LAS

 

왜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언뜻 생각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레즈비언 서사로 각색하는 것은 유효한 선택 같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야말로 불꽃 같은 헤테로 로맨스의 정점 아니던가. 운명의 사랑, 집안의 반대.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극이 시작하자마자 크게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첫째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의 성을 따라야 하고 남자의 가문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점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줄리엣과 줄리엣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문제는 그들의 성이 다른 데 있었지, 이름이 같은 데 있지 않았다. 따라서 <줄리엣과 줄리엣>의 갈등구조는 매우 1차원적으로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여자와 여자가 사랑을 한다 -> 어찌 그런 일이?!로 귀결된다. 

둘째,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아름다우나 완전해야 아름답다... 극본을 대다수 그대로 따오면서 어미만 현대적으로 바꾸어 문장의 아름다움도 못 살리고 내용 전달도 힘들게 되었다. 

셋째, <로미오와 줄리엣>의 큰 사건인 머큐시오와 티발트의 죽음을 빼고(줄리엣 몬태규의 동생 로미오가 원작의 로미오, 머큐시오, 벤볼리오를 짬뽕한 역할을 담당한다) 줄리엣과 줄리엣의 사랑에만 집중하여, 흐름상 2막부터는 오리지널 내용이 줄을 잇고 이럴 거면 왜 굳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갖다 썼는지 아리송한 지경이 된다.

현대의 줄리엣과 줄리엣은 어디로 갔나?

제일 화가 나는 지점이 바로 3번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삼은 이유가 인지도의 제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하게는, 페미니즘과 더불어 연극/뮤지컬판에서는 게이에 비해 드물었던 레즈비언 서사가 '뜨는' 트렌드에 편승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자가 결혼하면 출가외인도 모자라 사유재산 취급 받던 시대의 일이고, 여자와 여자가 사랑할 수도 있답니다~ 하고 가시화하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서 끝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에서 레즈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레즈비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줄리엣과 줄리엣>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체 무슨 메시지를 던지나?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흐름 상의)1부와는 달리, (머큐시오와 티볼트의 싸움이 부재해서 어쩔 수 없이)오리지널 노선을 타는 2부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차라리 <로미오와 줄리엣>을 차용하지 말고, 오리지널 스토리와 캐릭터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함께 살 집을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나, 주인공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고백했다고 하는 주인공의 남동생을 등장시켰으면 더 재미있고 무엇보다 의미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여자와 여자도 사랑이라는 걸 한답니다~'라는 21세기에는 하나마나한 소리 반복하는 것을 넘어 레즈비언들이 겪는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줄리엣과 줄리엣>은 잘 알려진 작품이고 각색하기 쉬워서, 라는 점 외에 굳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택한 이유가 보이지 않고, 그마저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떻게 각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연극 자체의 엉성함도 큰 문제다. 뜬금 없는 부처님 타령과(만드는 과정에서 아무도 이걸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현대적으로 각색을 하고 싶은 것인지 정극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 둘 사이의 괴리에서 웃음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부유하는 전반적인 톤과, 어설픈 연출(특히 스툴 활용이 그랬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워낙에 유명하고 수도 없이 변주되어 희곡보다는 공용 소재 같이 되어버렸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고 원작의 아성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단순히 여성서사라고 해서 완성도에는 눈 감고 볼 것도 아니라는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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