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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적
샤우뷔네 베를린 &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2016-05-26
가장 효과적인 사회극이란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을 뒤통수를 내리치듯 건드리는 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의 적>은 한국에서만큼은 엄청나게 급진적이거나 충격적인 작품은 아니다. 주인공이 주장하는 아포칼립스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낙후된 조그만 시의 자랑거리이자 재원인 온천. 온천 주치의로 일하던 슈토크만 박사는 온천에 공장 폐수가 흘러들어 건강에 좋다고 광고하는 온천수가 실은 오염된 균덩어리라는 것을 밝혀낸다. 슈토크만 박사는 언론을 등에 업고 이를 발표하려 하지만, 시의원이자 슈토크만의 형인 페터는 온천에 오염수가 흐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은 물론 시 전체의 경제가 흔들릴 것이라며, 슈토크만을 해고하겠다고까지 협박한다. 온천 보수 사업으로 이익을 볼 생각에 슈토크만을 지지했던 언론사 사장과 부하직원들은, 지자체 재원이 없어 결국 신문의 주요 구독자인 중산층의 세금을 증세해야 할 것이라는 페터의 말에 거짓 보고서를 기사로 낸다. 슈토크만은 대중을 향한 연설에서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가족, 집단, 사회, 뭐 그런 것들을 이루는 촘촘하게 얽히고 얽힌 억압과 규범들이 인간을 존재하게 하고 이끌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슈토크만은 인간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다수가 이익을 위해 소수를 압박하고 침묵하는 사회라면, 아예 문명이 몽땅 멸망한 아포칼립스가 나을 거라고 역설한다. 이 때 슈토크만은 묻는다. 지금 자신을 지켜보는 대중은 어느 쪽인가?
<민중의 적>은 메타발언도 잦고, 실제로 제 4의 벽을 무너뜨리며 관객을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시킨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민중의 적>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게 있을 것이다. 옥시 사건이다. 좀 더 청결하게 쓰겠다고 넣은 가습기 살균제가 유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이러한 사실이 십년 가까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은폐되어 왔다. <민중의 적>의 상황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슈토크만의 연구는 정확했고 온천수에 흘러든 폐수는 치명적이었으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슈토크만이 연설을 마치고 첫 번째 관객 발언자가 정확하게 옥시 사건을 언급함으로써 명확해졌다. 사실 첫 발언자의 옥시 사건 언급은 시기적절했음과 동시에 극을 완전히 깨뜨렸다. 더 이상 <민중의 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메시지를 느끼는' 수준에서 감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보다 더 나쁘게 진행됐음에 있다.
다수의 대중은 우매한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기적이지만 우매하지 않다'이다. 얼마 전 20대 여성이 강남역 근처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피해자와 나이가 비슷하고 주거지 또한 살인 장소에서 멀지 않다. 당장 나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건이라고 느낀 나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하러 몇 번 갔었다. 그리고 나오면서 8번 출구 삼성 본사 앞에 있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사망한 사람들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보았다. 항상 8번 출구를 지나치면서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접한 장소에서 열린 추모에 참여하면서 해당 시위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 이 때 강남역 살인사건에 관심을 갖고 삼성 노동자 사망사건에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던 나는 무지한가?
내가 강남역 살인사건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건 나와 깊게 연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와 관계가 있든 없든,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는 주제는 정해져 있다. 문화 격차,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 교육 격차 문제 등. 대중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는데, 대체 그 '대중'은 무엇인가? 누구나 자신과 관련이 있거나 자신이 관심이 가는 사건에만 적극적으로 정치적 스탠스를 취한다. 이를 보고 무지하다고 할 수 있나? 침묵한다고 할 수 있나?
슈토크만 박사는 분명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일을 다니면서도 거의 혼자 육아를 전담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슈토크만이 온천수 문제에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한 건 온천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전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슈토크만은 여성의 육아 전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또는 사회 전체를 뒤덮은 경제 문제나 높은 실업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수'란 무엇인가? 한 사회를 대중과 대중이 아닌 사람으로 나눌 수는 없다. 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사회 문제는 한 번에 한 개씩만 차례대로 일어나주지 않는다. 슈토크만이 비난했던 시의원이나 언론사 사장은 온천 문제는 덮으려고 했지만 청년실업률이나 경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온천 문제는 하고 많은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는 우매하다고 매도되어도 되는가? 만약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침묵했다면, 침묵 또한 소수의 의견 피력만큼이나 적극적인 행위이다. 대중은 대다수의 문제에 대해서 침묵도 의견 피력도 하지 않는다. 있는지 모를 뿐이다.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사회가 복잡다단한 만큼 이해관계는 생각보다 촘촘하게 얽혀있고 또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목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이상을 제쳐두고 현실적으로 다수가 기존에 관심이 있었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일부 문제에만 '이기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슈토크만은 온천 문제에 있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발언한 소수였지만 다른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시하는 다수가 아닌가.
내가 나의 이해관계와 관계없거나 상반되는데도 어떠한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정의롭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정한 사건의 피해자가 진상 규명을 하고 나서면 그것은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다. 권익 투쟁이고 당연한 일이다. 슈토크만은 분명 정의로운 명분에서 출발했지만 형에게 상처 받은 일 때문에 다른 생각은 덮어두고 페터를 엿 먹일 궁리부터 했다. 당연히 진실은 알려져야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를 지나치게 조장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언론사 사장의 궁색한 변명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천은 시의 거의 유일한 재원이다. 온천 문을 닫기 전에 소독이나 다른 방법으로 온천을 정화시킬 수 있는지, 공장 폐수가 실제 오염원이 맞는지, 오염된 온천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는지. 온천이 오염됐다는 걸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진실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 꼭 고려해야만 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신문은 신문에 나야 할 일, 나지 않아야 할 일, 지면을 더 크게 또는 작게 할애해야 할 일을 선정해서 내보내고 있다. 진실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어휘다. 오염된 온천수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당연히 안되겠지만, 온천이 문을 닫음으로써 시에 미칠 경제적 문제 또한 당연히 생각해봐야 한다. 온천의 오염수가 건강을 해치는 것 마찬가지로-더군다나 작품 속에서 오염수의 영향은 피부염과 설사 정도였다- 곤두박질칠 사회의 경제 상황 또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경중을 따지면 안 되지만, 온천의 폐업으로 당장 일자리를 잃고 생활에 타격이 오는 사람들은 온천수에 요양하겠다고 오는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떻게 고려하지 않을 수가 있나?
연극을 보며 느낀 것은 '아 역시 독일 선진국이구나', 이 느낌이었다. 슈토크만 박사는 나이브한 사람이고, 그것은 연출가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작품을 전세계 각국에 동시다발적으로 투어를 돌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관객참여형의 작품을 올리려면 연출가가 해당 국가의 사회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살펴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게 파고들 것도 없이, 인터넷 검색만 해 봤어도 옥시 문제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옥시 사건은 <민중의 적> 극을 쓰는 원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딱 알맞고, 심지어 더 처참하다. <민중의 적>이 말하려는 메시지를 받자면 옥시 사건을 언급하는 관객에게 '그 얘기를 왜 극장에서 하느냐, 높은 사람들에게 목소리 내어 외쳐라'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슈토크만 박사는 이러한 일을 '왜 투표하지 않는가, 투표하면 된다'고 했다. 굳이 아포칼립스를 가정하지 않아도 <민중의 적>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아포칼립스 상태다. '실천하는 소수보다 침묵하는 다수가 항상 옳은가?'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문제를 던지는 <민중의 적>은, 한국에서 멍청한 다수 운운하며 삿대질을 하기에는 너무, 이미 발전해서 사회 제도가 보장되어 있고, 남은 것은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 몫인 선진국의 시선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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