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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2018년 읽은 책

BIBC/빕 2018. 5. 13. 00:02

1.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arte 펴냄)
악스트지 15호의 작가 인터뷰에서 발췌
"(선략)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데,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우리를 만들고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25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현대의 치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망가졌는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비극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말은 옳다. 어느 정도는 고통이 우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관점을 바꾸는데, 관점이야말로 문학의 핵심이다. 경험을 통해 인물의 관점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문학의 본질이다."
작가가 어릴 때 부모님이 부친의 외도로 이혼하고, 작가의 아버지는 두 번째 부인과도 외도로 파혼하고 만다. 작가의 아버지가 작가에게 알래스카의 외딴 수콴 섬에 가서 같이 지내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작가는 싫다고 했고, 그 직후 아버지는 두 번째 부인에게 전화를 걸다 자살한다. <자살의 전설>은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충격과 그에 대한 죄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전적 연작소설이다.  5개의 단편과 1개의 중편에 모두 자기연민과 고독에 짓눌려 자살하는(또는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로 인해 망가진 아들이 등장한다. <자살의 전설>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아버지를 받아들인 방식과 자신의 감정을 재구성하여 아버지를 증오하고 자신의 죄의식을 드러내며 끝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망가뜨렸고 또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와 글쓰기를 통해 조우하여,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 같다. 예술을 통한 치유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끔찍해서 더는 보고 싶지 않지만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출 수 없었던 작품. 아래는 인상 깊었던 구절.
기억이란 실제보다 아주아주 풍요롭다 과거로의 회상은 기억 자체로부터 기억 하나를 덜어낼 뿐이다. 기억이 삶 또는 자아를 세우는 기반인 한 귀향은 삶과 자아를 제거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p.278

2.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아작 펴냄)
'페미니즘 SF가 선사하는 달콤한 악몽'. 책 뒷표지에 적혀 있던 이 카피만큼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어떻게 상상했을까, 입이 떡 벌어지는 미래기술의 묘사보다는 종과 존재를 배신하면서까지 별을, 저 너머를 사랑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들에게 우주는 한편으론 다정하면서도 너무나 광대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에 동시에 한없이 잔인한 공간이다. 매 단편마다 결말부에서 (대부분) 잔혹한 반전으로 충격을 남기는데, 미지의 우주가 이끄는 운명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주인공들을 보노라면 마치 그리스 비극을 읽는 기분이 든다. 험난한 우주를 의지의 힘으로 개척하는 류의 소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그저 우주 속 아무 영향력 없는 먼지로 묘사한 냉랭한 소설도 아니다. 소설의 주를 이루는, 사랑하는 별들을 탐험하러 떠나는 용감한 여성캐릭터들 또한 매력적이다.

3.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지음, 민음사 펴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린다. 매일매일 희망을 절망으로 끝내고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선사하는 고도를... 고도가 끝까지 누군지 본문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고도를 기다리며>는 읽는 이에 따라 각양각색의 해석이 존재하고 독서하며 나름대로 공백을 메꾸는 재미가 가장 큰 작품 중 하나이다. 나는 고도의 존재 및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 그 자체가 절망이 아닐까 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있어 누구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행위는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삶 그 자체가 발현하지만 의미 없는 장난이나 촌극을 해댈 뿐이고,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에스트라공에게 삶은 축적되지 않고 그저 흘러가 버린다. 고도는 아무 이도 아닐 수도, 이미 죽었을 수도, 어쩌면 이미 마주친 포조나 럭키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고도를 기다리기 때문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인류의 삶이 비극에 빠졌음은 확실하다. 삶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불행하다는 것만을 자각하고 뭔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인생은 그만큼 비극적이다.

4.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에 게재한 음식 칼럼을 한데 모아 계절별로 나누어 출간한 산문집. 애주가이자 안주 애호가인 작가가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취향과 단상, 어릴 적 기억 등을 풀어놓았다. 기본적으로 '남이 먹는 음식 얘기 읽어서 뭣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방송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부해'를 홀린 듯 쳐다보듯 작가의 쫀득한 필력에 빠져들어 훌훌 읽게 된다. 찰떡 같은 비유를 자랑하는 작가의 다른 소설책이 읽어보고 싶다.

5. 고딩관찰보고서 (정지은 씀, 낮은동산 펴냄)
국어교사인 작가가 초임 및 2번째로 부임한 학교를 중심으로 기억에 남는 학생들의 이야기와 학교 시스템에 대한 단상을 쓴 에세이. 비교적 젊은 선생님이라 그런지(중년의 남성공무원이 지방 출장을 다니며 뿌듯함을 느끼는 <관동별곡>의 정서에 공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고 작가소개에 쓰고 있음) 통통 튀고 재미있는 문체가 특징이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교사의 위상이나 영향력이 많이 감소한 가운데에서도 한 아이의 인생에 영향을 미쳐 교사로서 소명의식을 불태운 얘기, 또는 어떤 학생은 교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든가 대체로 학생들이란 '학생'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 얼마나 다양하고 가지각색인지 말하고 있음.

6. The Jungle (Joe Murphy & Joe Robertson)
<The Jungle>은 저자들이 프랑스 칼레의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며 극장을 설립하여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7개월 뒤 해당 난민캠프의 절반이 추방당하면서 극장은 폐쇄되었다. 저자들이 세운 Good Chance Theatre는 난민캠프 출신의 배우들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을 기념하고 난민캠프의 실태를 전세계에 전하고 있다.
각자의 전쟁을 이겨내고 프랑스 칼레에 도달한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눈앞의 영국에 가기 위해 또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하고, 금방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난민캠프는 또 하나의 집이 되어버린다.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딜레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려 난민캠프를 일구고 발전시키지만, 그럴수록 눈 앞의 도버 해협이 영영 멀어지는 듯 하다. 그래서 레스토랑의 건물을 올리고 서빙을 하며 난민캠프에서 가장 건실했던 소년은 계속되는 좌절에 미쳐버린다. 겨우 한 가지 조그만 성취를 해내면 더 큰 절망이 찾아올 뿐이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2016년 칼레 난민캠프의 절반이 추방당하고 뒤이어 나머지 절반이 추방당했던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흔든다.

7. Killer Joe (Tracy Letts 지음, Samuel French 펴냄)
'트레일러에 사는 가난한 가족은 부유한 사모님을 죽여 사망보험금을 타기 위해 냉혹한 킬러 조를 고용하고, 킬러 조는 선급금 대신 순진한 여동생을 요구하지만 예상치 못한 맞수를 만나게 되는데...'라는 소개에 반전 있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가 하고 홀려서 샀는데 완전 꽝이었다. 모럴과 인간성을 잃어버린 미국 백인 빈곤층 가정을 다룬 희곡으로, 트럼프 시대를 맞아 웨스트엔드에 다시 한 번 부활했다. 모두 다 나사 한 개쯤 빠져있지만 작중 가장 희생 당하는 도티는 동기와 목적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 뭔가를 상징하기 위한 도구마냥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로 나온다... 삶의 밑바닥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성착취당하고 그 지점이 싫다.

8. 코끼리 가면 (노유다 지음)
예술(글쓰기)은 인간의 고통을 치유한다고들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책이 꼭 저자의 아픔을 치유했기를 바란다. (끔찍하게도) 현대에 흔하게 접하는 이야기인데도 가면 뒤의 개인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숙연해진다.

9. 홀 (편혜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남편은 아내의 어머니에게 심판 받아 구덩이 속에 빠진다. 이렇다할 서사도 변화도 없는데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과, 후반부로 갈수록 과거의 이면이 한꺼풀씩 드러나는 것이 속도감 있고 재미 있었다. 구덩이나 공허 같이 상징적인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와서 대체 아내의 슬픔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계속 고민하였으나 장르소설인 만큼 몰입해서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한다. 박찬욱이 좋아할 것 같은 책.

10. 해리 (공지영 지음, 해냄 펴냄)
대장암을 진단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러 고향 무진으로 내려간 인터넷매체 기자 한이나는, 무진의 자랑으로 떠오른 어릴 적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과 친구의 소식을 접하며 무진의 바닷가를 덮는 안개보다도 더 무섭고 어두운 인간의 내면과 마주한다. 제목이 뜻하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처럼, 주 비판 대상인 보수의 텃밭에서 자라난 진보적인 인물상으로 추앙 받으나 겉과 달리 속이 시커먼 인간들은 '팽목항을 방문하고 광화문에 연설을 하러 가고, 박근혜 퇴진운동을 벌인다'고 묘사되며 가장 최신의 시의성을 띄고 있다. 책의 서문에 쓰인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허구에 의해 씌여졌으며,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모두 당신의 사정이다'라는 문구는 굉장히 시니컬하고 반대로 작가가 특정한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쓴 고발문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한다. <해리>를 '한 악녀에 대한 보고서'라고 소개하는 작가 공지영의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에는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치마폭으로 뭇 남자들을 유혹하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전형적인 팜므파탈), 사회 면 칼럼을 읽는 듯 비유가 적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문장들이 가슴에 콱콱 박힌다.

11. The Handmaid's Tale (Margaret Atwood 지음, Vintage 펴냄)
근미래, 개신교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여자들을 해고하고, 계좌를 정지하고, 재산의 소유를 금지한다. 여자들은 남편의 직급과 가임여부 등에 따라 구분되어 사유물화된다. 가장 끔찍한 것은 이런 미래가 실제로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는, 이러한 극단적인 아포칼립스 상황이 아닌데도 출산지도며, 메갈에 대한 다수의 맹목적인 분노 등 근본적으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녀이야기>는 후에 발견되어 남학자들의 연구 사료로 전락하여, 묘한 현실감을 더한다. 1인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건조한 문체를 유지하지만, 후반부에 주인공이 두려움과 외로움에 무너지면서 문장들이 감정에 일렁이는 게 보이는 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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