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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2019년 읽은 책

BIBC/빕 2019. 2. 4. 15:57

1.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지음, 민음사 펴냄)
꾸준히 책읽기에 대한 글을 써온 정혜윤 작가의 '책을 읽어서 뭣에 쓰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안.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경험한 에피소드와 나름의 해답을 내놓는다. 독서를 하다보면 책이 말하는 메시지란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현실과 괴리되는 느낌을 종종 받는데, 저가는 다독가로서 누구보다도 그 괴리감과 치열하게 싸워왔을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책 속의 이상 같이 고매한 것은 피어나지 못할 진흙탕 같아도, 결국엔 내가 읽은 책대로 사는 것, 책을 읽고 내 행동이 변화하는 것이 독서의 의미라는 작가의 메세지는 간단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 깊이 울린다. 방대한 독서량의 다독가이고 책을 사랑하지만, 결국엔 현실 속의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사람.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 닮고 싶은 사람 중 한 명.

2. The Rumour (Lesley Kara 지음, Arte 펴냄)
어린 시절 다른 남자아이를 살해한 여자 살인범이 시설 수감 후 정부 감독 하에 이름과 직업을 바꿔가며 사는데, 주인공이 이사 온 마을에 그 살인범이 거주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주워들은 정보에 주인공이 살짝 말을 보탠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살인범을 가리키는 의혹의 화살이 매번 다른 사람을 향하는데 챕터별로 벌어지는 반전이 숨막히게 재밌다. 마지막 한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소설.

3. 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 말글터 펴냄)
조금 더 세련되게 정제된 광수생각. 모두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형체는 불분명한 것들을 모아놓은, 심지어 언어 사용의 참신함도 부재한 책. 이해 안 된다 요즘 베스트셀러...

4.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지음, 열림원 지음)
무한한 부를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버린 남자에 관한 우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낭만주의 노벨라의 표본이다. 저자는 확연하게 물질주의를 경계하고 있지만, 단지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을 배척하는 사회는 개별적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5. 비하인드 도어 (B.A. 패리스 지음, arte 펴냄)
타인의 공포를 주식으로(비유적인 의미로) 삼고 살아가는 잭은 완벽한 신사로 가장해 그레이스와 결혼한다. 잭은 그레이스에게 겉으로는 완벽한 결혼생활을 연기하기를 종용하고, 안으로는 보다 유약하고 쉽게 겁줄 수 있는 그레이스의 다운증후군을 앓고있는 동생 밀리를 노린다. <브레이크 다운>과 마찬가지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려야 하는 흡인력 있는 소설. 현대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백인 남자 - 너무나 현실적인 싸이코패스의 배경에, 잭이 그레이스에게 저지르는 짓들이 이런 것을 소재로 스릴러 소설을 써도 되는 건가 고민이 될 정도로 끔찍했다. 특히 사회적 최약자를 노리는 잭의 모습은 아주 구역질이 남. 주변 여자들과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그레이스가 있어서 이 소설을 견딜 수 있었다.

6. 브레이크 다운 (B.A. 패리스 지음, arte 펴냄)
캐시는 폭풍우 치던 밤 숲길을 지나가다 정차한 차 안에 있던 여자를 발견한다. 구조의 신호가 없고 날씨가 너무 험해 캐시는 그대로 지나치고, 다음 날 여자의 사망소식이 전해진다. 캐시는 죄책감에 휩싸이고, 마치 부작용처럼 건망증과 피해망상이 점점 심해진다.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 신체적, 언어적 폭력 하나 없이 심리적으로 숨통을 죄어오는 소설이다. 긴 악몽을 꾸는 듯 했던 전개와 달리 엔딩은 치정으로 끝나버려서 아쉬움.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

7. 1984 (George Orwell 지음, Robert Icke & Duncan Macmillan 각색, Oberon Plays 펴냄)
원작 1984의 구구절절한 배경설명을 과감하게 축약시켜, 더 차갑게 뒷통수를 때리는 희곡. 당이 무너진 후의 미래를 암시하는 원작의 부록 '신어 사전'의 내용을 삽입하여, 후대의 북클럽 회원들이 윈스턴의 일기를 읽고 토의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북클럽 사람들은 마치 환각처럼, 꿈처럼 윈스턴의 곁에 부유하고, 윈스턴이란 인물이 실재했는지 아닌지, 당이 무너지고 신어는 배포되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마저 당이 그렇게 믿도록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소름 끼치는 의문을 제기하며 조작되고 통제된 정보가 끼치는 영향력을 더욱 통렬하게 드러낸다.

8. 사이드트랙 (헨닝 망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스칸디나비아 스릴러의 대가 헨닝 망켈의 '발란데르 형사' 시리즈. 총기 사고를 낸 트라우마에서 극복 중인, 구식인 면이 다소 있는 중년의 경관 발란데르. 시시껄렁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의 눈 앞에서 어린 외국인 소녀가 분신자살을 한다.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때, 사람을 살해하고 머릿가죽을 벗겨가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특수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사건이 전개되는 90년대 후반을 저자는 복지국가의 아성도 한풀 꺾이고, 물질적 빈곤은 극복했으나 정신적 가난이 고개를 드는 때라고 소개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범인이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부당한 폭력을 단죄하기 위해서라는...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나 북유럽 스릴러는 접해본 적이 많이 없어서, 책에서 묘사되는 스웨덴의 모습이 새로웠다. 특히 물질적인 가난은 개개인이 극복할 수 있을만큼의 제도적 수준에 도달했으나,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그것의 대체재를 찾지 못해 사회부적응자(정신적 가난)들이 생긴다는, 스웨덴의 배경이.

9. An Iliad (Lisa Peterson, Denis O'Hare 지음, Overlook Duckworth 펴냄)
호머의 일리아드를 각색한 1인극.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상사를 목도하고 그를 노래로 읊는 '시인'이 내레이터로 등장하여,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중심으로 한 일리아드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때때로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신화 속의 대전쟁이지만, 전쟁의 원인은 결국 개인과 개개인이 이루는 집합의 증오이며 증오는 중독성이 있다. 프리아모스의 간청을 들은 아킬레우스가 증오를 버리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면서 인간의 선함에 대한 희망이 엿보이는 듯 하지만, 우리 모두 트로이 전쟁의 결말을 알고 있으며 이후에도 전쟁이 끊임 없이 벌어져왔음을 안다. 시인은 일리아드를 노래하지만, 그리스의 병사들은 우리 동네의 청년들과 다름 없으며 트로이 전쟁은 십자군전쟁, 100년 전쟁, 이라크 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다를 것이 없다.

10.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안미선,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그린비 펴냄)
IMF 이후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증가하면서 진입장벽이 낮고 고용이 유연한 일자리로서 특히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종사하고 있는 백화점 비정규직에 관해 다룬 르포. 백화점 내 매대나 브랜드에서 일하는 직원은 물론이거니와 브랜드 점장마저 다 비정규직라고 한다. 백화점은 연중 세일에 연장영업을 하며 근무시간을 늘리고 월별매출을 쪼는 데다, 브랜드 본사에서는 목표매출과 상품으로 쪼니까 심지어 직원들이 자기 카드로 우선 매출을 채워두고 상품이 실제로 나가면 카드취소를 해서, 대금결제와 급여가 들어오는 타이밍이 엇맞아 빚을 떠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고객과 같은 화장실, 엘리베이터 못 쓰고, 열악한 휴게공간이나 의자 없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백화점 직원들이 힘든 건 알았지만, 입사와 퇴사가 쉽고 별다른 경력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서 여성들이 많이 진입하고, 결국 비정규직 중에서도 최하층인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유지한다는 점은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이었다. 백화점과 브랜드라는 대기업들이 철저하게 개개인을 착취하면서 돌아가는 구조였음.

11. Network (Lee Hall 지음, ff Plays 펴냄)
개인의 주체성을 대신하는 만들어진 분노, 맹목에 대한 위험. 아무것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분노하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경고. 그 위험을 경고하려 했던 자마저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메세지에 짓눌려 살해당하는. 유투브 등 쌍방향 매체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정보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고 판별하기 힘든 가짜뉴스가 판을 쳐서, 70년대 영화 원작임에도 유효한 메세지를 던진다.

12. 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지음, 웨일북 펴냄)
회사의 젊은 피이자 주력 소비자층인 90년대생들을 직원으로서 어떻게 함께 일하고, 소비자로서 어떻게 사로잡을 지 분석한 책이다. 요약하자면 90년대생들과 일할 땐 쓸데없는 형식이나 모임 등을 줄이고 개인주의적 태도를 받아들여야 하고(휴가나 점심시간의 자유로운 이용 등), 소비자로서 대할 땐 간편함과 신뢰도를 앞세워야 한다고 한다(카카오송금, 질소과자 등). 또한 SNS가 발달하면서 기업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VOC 외에도 기업이나 상품에 대한 리뷰가 활발하게 공유되어, 더 이상 소비자를 속이지 못한다는 점도.
나도 이 책이 말하는, 폰을 못 놓는 90년대생이지만 아무래도 평균보단 아날로그적 인간에 가깝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의 일원으로서 객관적으로 평가 당하는 느낌이라 재미있었다. 내가 이해 못 하는, 나보다 좀더 어린 세대들의 면모(텍스트보다 영상매체를 선호한다든지)도 이해가 좀 되고. 뭣보다 젊은 세대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꼰대가 아니라 정말 현실반영 100%의 레퍼런스들을 끌고 와서 신뢰도가 상승함.

13.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창비 펴냄)
사회의 소외된 어두운 틈새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

14. 마케터의 일 (장인성 지음, 북스톤 펴냄)
콕 집어 마케터라기보단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 다만 이렇게 일하려면 워라밸은 던져버려야 할 듯. 즐겁게 일하되 일이 곧 삶이 되어야 함...

15.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사계절 펴냄)
소득분위에 따라 9분할되어 문명사회의 핵심인 옳고 그름에 대한 규준이 상위 지구에 집중된 세계. 세상의 밝은 면밖에 보지 못했던 순수하고 도덕적인 소년이 죄책감과 신념을 지우고 손에 쥔 것을 지키기 위해 '악'으로 진화하는 신화를 담았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며 무지가 죄책감으로, 이어 다윈의 대에서는 죄책감도, 갈등도 없는 순수한 악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 악의 기원을 담은 신화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악은 계급과 가부장제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16.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박현선 지음, 헤이북스 펴냄)
핀란드에서 거주하는 저자가 핀란드에서 크게 활성화되어 있는 중고가게들과 중고 거래 문화의 바탕에 대해 조사한 책. 급속도의 경제성장 직후 극심한 경제공황을 맞은 90년대 초,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국가 단위의 중고물품 가게들이 건립되기 시작했고, 그 명맥을 이어 현재 핀란드에서는 정부, 민간 주도의 대규모 중고가게 체인점 운영은 물론 바자회 형식의 자발적 중고거래 행사도 다양하게 열린다. 수집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가게는 물론, 선반 당 대여료를 받고 판매자가 직접 금액을 책정해 물건을 진열 후 판매대금을 정산 받는 판매대행 중고가게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물건을 물려 받아야 했던 공황 시기를 기억하는 기성 세대 중에는 중고물품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청년층 대부분 어려서 가족들과 함께 갔던 중고가게를 좋게 기억하고 있고, 패스트 패션이 범람하고 소셜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면서 중고거래가 크게 성행한 듯 하다. 확실히 동북아보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개인주의 성향 덕도 있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고거래가 성행한다고 해서 많이 사고 많이 버리는 소비 행태가 개선된 것은 아니며, 이러한 중고가게에 물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물건을 그만큼 많이 사기 때문이다. 아무리 핀란드에서 중고가게에는 남들도 쓸 수 있을만한 품질의 물품들만 내놓아야 한다고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어도, 가게에 내놓는 상당수가 유행 지난 패스트패션 의류이고 이는 결국 중고시장의 전반적 질적 저하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중고의류를 아프리카 등에 무상 또는 저가로 판매하는 사업도,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은 현지에서도 대부분 폐기되어, 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처분하고 현지 의류산업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국 한 철 쓰고 고장나는 하품의 것이 아닌 오래 쓰고 재사용할 수 있는 양질의 제품을 소량 생산하고 소비자도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리는 소비양상을 개선해야 하는데, 핀란드의 중고가게가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지만 핀란드에서는 중고가게가 전문화되면서 자투리 면직물만을 모아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중고가게 브랜드에서 학교, 기업을 대상으로 재활용, 재사용 교육을 실시하는 듯 다양한 대책들을 강구하는 모양이다.

17. 후아유 (이향규 지음, 창비교육 펴냄)
탈북민과 다문화 가정의 교육을 돕던 작가가 영국인과 결혼해 자신 또한 다문화가정이 되면서,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던 차별과 구분짓기에 대해 쓴 에세이. ‘국제결혼’이 아니라 ‘결혼’이라 힘든 건데 정부에서 나온 조사에서는 가정의 불화를 모두 다문화 가정 탓으로 돌리는 듯 하고, 자신들은 국가보조를 받을 가난한 형편이 아니지만 다문화가정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보조금을 거절하면 정작 필요한 가정에 혜택이 가지 않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남편의 건강 문제로 영국으로 넘어간 후에는 한국에서 차별 받는 동남아권 결혼이주여성의 삶을 그대로 경험한다. 학교로 가서 탈북민 아동들의 사회적응을 위해 도움을 달라고 호소하면, 지원이 필요한데 법률 테두리 안의 소외계층에 포함되지 않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한국 학생들도 많다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차별을 철폐하고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끊임 없이 힘썼지만 차별 받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도움은 커녕 상처만 주기도 했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차별이 없는 사회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고민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담장 밖을 내다보는 키 큰 아이, 중간 아이, 키 작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진짜로 차별이 없는 사회는 키에 따라 발받침을 달리 주는 사회가 아니라, 키에 상관 없이 모든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담장을 철조망으로 대체한 사회일 거라는 것. 사회적 약자 계층에게 주어지는 지원혜택을 보고 ‘공평하면 평등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가 많은 요즘, 더욱 인상 깊었다.

18.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서메리 지음, 미래의창 펴냄)
대학교 졸업 직후 취업하여 5년 동안 쉼 없이 회사생활을 한 결과, ‘자신은 회사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낸 저자가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들어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1인 출판사, 번역가가 되기까지를 그렸다. 정해진 일과와 장소에 억지로 스스로를 맞춰놓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료들과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회사생활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저자와 달리,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회사가 체질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여우 같은 전기장판과 토끼 같은 넷플릭스가 있는데 스스로를 채찍질해서 업무를 시작해야 하고, 일감이 없는 공백기의 그 불안감... 나는 절대 못 견딜 것 같다. 저자는 현재 일이 끊임 없이 들어와서 오히려 좀 쳐내야 할 정도로 성업 중인 ‘잘 풀린 케이스’지만, 
퇴사 후 학원 수강 등 공부하는 시간 포함하여 1년 반의 공백이 있기도 했고, 프리랜서 시장의 전반적인 정보 부족과 프리랜서로 살아남기에 생각보다 훨씬 보잘 것 없던 자신의 능력(저자의 경우 번역), 그리고 자신을 좀먹는 공백기의 불안감 등 프리랜서 전향의 어려움도 잘 나와 있어서 프리랜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읽어봐도 좋을 듯. 

19. 개떡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는 법 (안드레아 오언 지음, 글담 펴냄)
완벽을 추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소개를 보고, 요즘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구매했는데 다시금 느낀 점은 내가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대세의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하며 어깨 두드려주는 책은 아니고, 이러한 목록을 만들고 이러한 생각을 해 보라는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책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여성 저자이고, 여성만 상담해서 특히 여성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자신의 능력을 깎아내리거나, 일과 가정에 무리하게 헌신하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성취감을 느끼거나, 감정적이라는 평가가 싫어서 감정을 억누르는 등)을 다뤘다. 그러나 서양사람이라는 게 너무 느껴져서, 제시된 사례들에 공감되기보다 미드를 보는 기분. 

20. 멋진 징조들 (테리 프래쳇, 닐 게이먼 지음, 시공사 펴냄)
이 오타쿠 바이블을 이제야 보다니!? 서사는 심심한데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천사와 악마라는 캐릭터 설정이 정말 매력적이고, 영적인 존재 본인들 입으로 치는 신성모독적 개그가 너무 재미있다. 단, 예상치 못하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빻은 사상과 여성혐오는 주의해야 됨.

21. 자본주의 리얼리즘 (마크 피셔 지음, 리시올 펴냄)
저자가 너무 똑똑해서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는데(심지어 내가 본 영화나 책으로 예시를 삼아서 이야기하는 데도 같은 작품을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요지는 자본주의가 세계를 완전히 잠식했고,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문제들마저 자본주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판을 짜놓아서, 자본주의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는 거다. 책은 결국 자본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는 데 실패하는데, 2016년에 저자가 자살했다고 해서 더 절망적이었음...

22. The Business of Broadway (Mitch Weiss, Perri Gaffney 지음, Allworth 펴냄)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뭘 하는 사람인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티브팀, 배우, 연주자, 스탭, 투자가 등등은 프로듀서가 뭘 알고 있기를 기대하는지 알려주는 실용서. 실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저자여서 그런지 도움 되는 것들이 많았다. 업계에 처음 뛰어든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듯. 

23. 당신의 신 (김숨 지음, 문학동네 펴냄)
결혼이라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집.

24. Norse Mythology (Neil Gaiman 지음, W.W. Norton & Company 펴냄)
어릴 때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짜세였어서 북유럽 신화를 제대로 읽어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재미있다! 세계를 감싼 뱀 요르문간드나 세계수 이그드라실, 심지어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 자매들까지 원전이 북유럽 신화란 걸 알게 돼서 놀랍고 반가웠다. 몸의 형태를 바꾸는 걸 특기로 삼고, 그걸 이용해 남을 조종하는 교활한 악당 스테레오타입의 원전은 단연 로키가 아닐까 하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설정은 없다는 듯이 많이들 차용하는 설정이 모두 북유럽 신화에 있었다. 특히 마지막 라그나로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끔찍했다 신화는 다 이런 걸까; 그리고 북유럽 신화 신들 하나 같이 못돼처먹었고 권선징악이 없다. 로키랑 거인들만 권선징악을 받음... 다들 로키가 하자는 대로 했다가 잘못되면 로키 탓 해가지고 라그나로크 일으킨 거 그럴 만 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토르는 제일 인기 있는 신인데도 무례하고 무식하게 묘사되는 점이 신기했다. 그리고 <어벤저스>의 영향인지 로키는 조연급일 줄 알았는데 북유럽 신화의 진짜 주인공은 로키였음을... 오딘의 의형제이자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는 괴물들의 아버지가 로키라니! 북유럽 신화에 관한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25.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로봇과 서사 (오은 지음, 살림출판사 펴냄)
카이스트 출신 시인이라는 독특한 약력의 저자가 로봇 서사에서 빼먹을 수 없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로봇을 다룬 미디어에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로봇을 미디어에서 다루려면 어떤 점을 다뤄야 하고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를 다룬 일종의 개론서. <아이로봇>이나 <A.I.>, <바이센테니얼 맨> 등 정말 유명한 작품에서 취한 기본적인 서사구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 편하고 읽기 쉽다. 오은의 시집을 한 번 들춰봤는데, 분명 시는 시인데 숨길 수 없는 이과 냄새가 났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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