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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정의의 사람들> ★★★

    • 공연기간: 2026.01.18~2026.02.22
    • 공연장: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 4관
    • 출연: 이서현 정지우 (야네크 역), 김준식 (스테판 역), 최하윤 (도라 역), 이정화 이예준 (야넨코프 역), 이사계 김민호 (부아노프 역) 최승하 서주원 (스쿠라토프 역), 전재희 이재은 (총독부인 역)
    • 원작: 알베르 카뮈
    • 연출: 김결
    • 음악: 하태성 / 조명디자인: 박도하 / 음향디자인: 김주한 / 의상디자인: 박문미
    • 주최, 제작: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1905년, 야넨코프를 필두로 한 테러리스트들이 2달 간의 준비 끝에, 극장에 방문하는 총독의 차에 폭탄을 던져 총독을 죽이기로 한다. 감옥에서 3년을 보내고 온 스테판은 복수에 가까운 테러를 다짐하지만, 폭탄을 던지기로 한 야네크는 사랑과 삶의 기쁨을 노래하여 스테판의 반발을 산다. 도라는 야네크를 감싸면서도 야네크가 폭탄을 던질 상대는 폭정이나 독재 그 자체가 아닌 한 명의 사람임을 경고한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저마다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지라도 독재 저지의 목표 하에 모인 정의의 사람들은 테러를 준비하는데...
*스포일러 있음


"우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냐. 우리는 그 무엇이야."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Les Justes)'은 1905년, 러시아에서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살해한 사회주의혁명당의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실존인물이고 그들의 실제 성향을 따랐으며, 이들과 대치시키기 위해 스테판만 카뮈가 만들어냈다고 한다. 카뮈는 사회주의혁명당 당원 보리스 사빈코프가 쓴 '테러리스트의 수기'를 참고하여 '정의의 사람들'을 집필하였다.
'정의의 사람들'은 알베르 카뮈가 사랑해 마지 않는 부조리(정의를 실현할 수단이 살인밖에 남지 않음)와 도덕적 딜레마(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품고 있다. 주인공 야네크는 폭탄을 던져 총독을 살해하기로 했지만, 자신이 죽이는 것은 총독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압제이며, 자신이 살인으로써 후대에게 자유와 행복을 선사하되 자신은 죽어서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테러 행위를 정당화하겠다고 한다. 야네크는 생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한다. 그에게 테러 행위는 결과적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인류를 향한 사랑을 위해서이고, 사랑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래서 야네크에게는 살인이 그저 살인으로 남지 않을 명분이 중요하다. 그래서 야네크는 어린 조카 둘과 함께 타고 있던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지 못한다(이 때 타고 있던 조카 중 한 명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다). 
반면, 3년 동안 감옥에서 지옥의 밑바닥을 보고 온 스테판은 와신상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 그에게 정의는 그 자신이 아니었나 한다. 대의명분보다는 복수심과 증오를 원동력으로 삼는 스테판은, 어린아이 둘이 타고 있었다고 해서 오랫동안 해 온 준비를 수포로 만드려는 동료들이 나이브해 보일 뿐이다. 야네크에게 중요한 것들이 스테판은 배 부른 소리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엔 대의를 위해 결성된 수많은 저항조직들이 결국 스테판 같은 과정을 밟는다.
극에서 가장 크게 변화하는 인물은 도라이다. 야네크와 연인 사이인 도라는 야네크가 살아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죽음으로써 테러를 완성할 심산임을 알고 크게 상심한다. 테러리스트들 모두 현재 자신들의 처지보다는 후대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지만, 도라는 자신들 또한 기쁨과 사랑을 누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야네크의 죽음 이후, 도라는 자신의 뜻대로 행복하게 죽은 야네크와 만나기 위해 자신이 먼저 폭탄을 던지게 해 달라고 한다. 

혁명과 폭력을 가르는 경계선은 무엇인지,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행복이 죽음 뿐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은 살인이 될 수 있는지, 살인의 명분을 살인자의 죽음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정의의 사람들'은 각각의 정의를 내세우며 살인을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각자의 고민이 현대적으로 다듬어진 텍스트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다. 우크라이나 침공, 가자지구 침공 등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그린란드를 무력으로라도 얻겠느니 어쩌니 하고, 또 개인적인 견해나 신념 등에 있어서도 '내 말이 무조건 맞아'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시대에 명분에 대해 끝없는 언쟁을 벌이는 '정의의 사람들'은 낭만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야네크가 죽인 총독이 폭정의 상징이 아니라 누군가의 남편이자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것처럼, 야네크는 타협하지 않고 바라던 죽음을 얻었지만 인간 야네크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가 되었든, 혁명이 되었든, 종국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사람을, 사랑을 위한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젠더프리 캐스팅도 신의 한 수였다. 원작에서는 도리야(야넨코프), 야네크, 알렉세이(부아노프) 모두 남자였던 것 같은데, 젠더프리를 통해서 도라가 밋밋한 여성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더 독자적인 캐릭터가 된 것 같다. 어차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전달보다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얘긴데, 굳이 모두 남자들일 필요도 없고 말이다. 특히 야네크 역 배우님은 사실 플랫하게 들으면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야네크의 이상과 믿음을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해 주셨고, 도라 역 배우님도 도라의 극적인 변화를 처절하게 표현해 주셔서 감탄하면서 봤다. 대학로 연극에서 젠더프리 캐스팅 시도가 엄청나게 많이 되는 중인데, 카뮈 연극의 배역이 여자배우들에게 주어진 것이 매우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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