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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2019)

크리에이터: 데이먼 린델로프

원작: 앨런 무어 & 데이브 기븐스

방영일: 2019년 10월 20일 ~ 2019년 12월 15일 (HBO)

출연: 레지나 킹(안젤라 에이바), 야히아 압둘 마틴 2세(칼 에이바), 제레미 아이언스(에이드리언 바이트), 루이스 고셋 주니어(윌 리브스), 진 스마트(로리 블레이크), 팀 블레이크 넬슨(웨이드 탈만), 홍 차우(레이디 트리유) 외

오리지널 <왓치맨>의 뉴욕 외계인 침공 사건으로부터 34년 후인 2019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경찰서장 저드 크로포드가 살해 당한다. 3년 전인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 자경단원 활동이 금지되며 자취를 감춘 옛 영웅 로어셰크의 가면을 쓴 백인 우월주의자 단제 '제7기병대'가 털사의 경찰 40여 명을 습격하여 살해한 '백야' 사건 이후 털사의 경찰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활동한다. 털사의 경찰 안젤라 에이바(활동명 '시스터 나이트') 형사는 마스크 쓴 동료인 '루킹 글래스', '레드 스케어' 등과 함께 크로포드 살해 사건 조사에 착수하는데...

※3화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백야' 이후 신변 보호를 위해 마스크를 쓴 털사 경찰

그래픽 노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자 2009년 잭 스나이더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진 앨런 무어 & 데이브 기븐스의 <왓치맨>의 시퀄을 그린 드라마다. 그래픽 노블 <왓치맨>의 결말과 동일하게 1985년 에이드리언 바이트('오지맨디어스')가 외계에서 괴물을 소환해 뉴욕 시민 3백만 명이 죽었고, 당시의 생존자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과 환청에 시달리며 뉴욕은 여전히 공포의 도시다. 닥터 맨해튼은 화성으로 떠난 채 인류의 어떠한 부름에도 답하지 않고, 닥터 맨해튼의 전 애인 로리 유스페칙, 전 '실크 스펙터'는 아버지의 성 블레이크를 사용하며 FBI 요원으로 활동, 마스크 쓴 자경단원들을 때려잡는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뉴욕 시민 3백만 명을 살해했음을 감추고 더불어 자신이 세계를 구한 '업적' 또한 세상에 알릴 길이 없던 에이드리언 바이트는, 모두 똑 같은 얼굴을 가진 정체 모를 하인들과 대저택에 은둔하며 미쳐간다. 

대저택에서 은둔하는 늙은 오지맨디어스

실제 역사적 사건이자 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인종 폭동이라고 불리는 1921년 털사 인종 대학살이 드라마 <왓치맨>의 서사의 중심에 있는데, 털사 인종 대학살은 딕 로랜드라는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당사자는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KKK단을 비롯한 백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당시 미국 내 흑인 상권 중 가장 규모가 커서 '블랙 월스트리트'라 불렸던 흑인들의 영업장과 주택에 불을 지르고 흑인들을 린치 및 살해한 사건이다. <왓치맨>에서는 뉴욕 사건 이후 취임한 로버트 레드포드 대통령이 그린우드 피해자들의 후손을 찾아 뒤늦게나마 보상금을 지금하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깜둥이라며 드러내놓고 차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여전히 '레드포드 보상금' 운운하며 아니꼬워한다. 2016년에는 자비 없는 폭력으로 악을 다스렸던, 이제는 종적을 감춘 옛 영웅 로어셰크의 가면과 일지를 차용한(로어셰크가 들으면 억울하겠지만 과연 인셀들의 마스코트다움) 백인우월주의자 극우단체 '제7기병대'가 정책적으로 유색인종을 보호하는 털사 경찰에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털사 경찰 40여 명을 습격한 '백야' 사건을 일으킨다. 주인공 안젤라 에이바는 '백야'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경찰로, 대외적으로는 빵집을 운영하며 마스크를 쓰고 '시스터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크로포드 사건을 수사하는 '화이트 나이트'와 '루킹 글래스'
종말의 시간을 예고하는 '제7기병대'

저드 크로포드가 죽던 밤, 안젤라는 자신이 경찰임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교외의 나무 밑으로 찾아가고, 휠체어에 앉은 나이 든 노인과 나무에 목이 매인 저드 크로포드를 발견한다. 안젤라는 노인을 아지트로 데려오고, 윌 리브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자신이 안젤라의 할아버지라고 소개한다. 윌의 말에 따라 저드 크로포드의 침실로 잠입한 안젤라는 KKK단 망토를 발견하게 되고, 저드 크로포드가 백인우월자의자였으며 '제7기병대'와 연관이 있던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저명한 원작 텍스트를 가져올 때 리메이크가 아니라 시퀄의 제작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왓치맨>은 원작의 반가운 얼굴들(오지맨디어스, 닥터 맨해튼, 실크 스펙터, 후디드 저스티스 등)을 다시 등장시켜 즐거운 추억팔이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작 <왓치맨>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에 걸쳐 자기파괴를 반복하는 인류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드라마 <왓치맨>은 인종차별 이슈를 메인 테마로 삼아 2019년에 해야 할 이야기를 한다. 지금 관점으로는 너무 '새하얀' 그래픽 노블을 2019년에 젠더나 레이스 블라인드 캐스팅하여 리메이크하기에는 원작 분위기를 훌륭하게 재현한 영화 <왓치맨>이 있고(암울한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려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TMI로 로어셰크가 덕후 마음 여럿 울렸는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닥터 맨해튼 파였다), 세계관을 잘 확장해서 <왓치맨>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시의성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세계관을 정말 잘 확장해서, 원작 팬들이 매 순간 감탄하고 설레게 한다. 종적을 감춘 닥터 맨해튼이나 오지맨디어스가 30년 간 뭘 하고 있었는지, 외계 침공에 대한 공포로 일단은 힘을 합친 전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전개를 제시함은 물론,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 가판대에 붙어있던 포스터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활용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신 없이 넘나들던 전개 방식을 영상화하면서 되살린 것도 큰 매력이다. 1921년 털사 인종 대학살부터 미닛맨들이 활동하던 시절, '백야', 안젤라의 인생여정 등 시점이 복잡하게 뒤섞이며 전개되니 보면서 정신을 단디 잡아야 한다.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경험하는 닥터 맨해튼처럼, 이 모든 사건과 기억의 홍수가 피날레의 한 점으로 결집되며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은 보면서 따라가려고 노력했던 만큼 매우 만족스럽다. 

'오지맨디어스가 무고한 시민 300만 명을 학살함으로써 전지구적 세계평화를 이루고, 진실을 밝히면 300만 명의 죽음이 허사가 되어 사건에 관계되는 영웅들이 그를 묵인하는' 그래픽 노블 <왓치맨>의 매우 찝찝한, 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던 결말이 30여년 후 책임 질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변화된 이들은 삶을 이어가며 제대로 결자해지되는 피날레라 더욱 의미 있다. 원작에 '세계 종말이 시간'을 알리는 둠스데이 클락이 있었다면 이번 TV시리즈에는 새 시대를 예고하는 밀레니엄 클락이 있고, 오지맨디어스가 과격한 방식으로 세계 평화를 손에 넣으려 했듯 이번에도 어김 없이 세계 평화를 위해 선을 넘는 악당이 등장해 인류는 또 비슷한 역사를 반복하지만, 원작을 지배했던 냉소와 허무를 넘어 도덕성과 유산,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등장 분량은 짧지만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던 닥터 맨해튼

사건이 전개되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되도록 사전 정보는 완전히 차단하고(차라리 원작을 한 번 더 읽자) 시청하기를 권한다. 나도 초반에 밟은 스포일러 때문에 굉장히 큰 재미를 하나 놓쳤다. 시즌1 피날레가 화려한 새 시작을 암시하며 끝났는데(피날레 보고 나서 포스터를 다시 보면 가슴이 쿵쿵 울린다), 아직 시즌2 제작 얘기가 없다... 시즌1만으로도 만족스러워서 이대로 끝났으면 하는 마음 반, 시즌1 잘 마무리했으니 또 충격적인 시즌2를 선보였으면 하는 마음 반이다. (마지막 어댑테이션으로부터) 10년 후에 오래된 텍스트를 가지고 오면서 팬들 추억팔이에 집중하기보다 완전히 새롭게 확장된 세계를 내놓는 이런 시퀄이라면 환영, 또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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