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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 스포일러

우선은 샌드맨 원작을 본 적이 없음을 밝힌다. <멋진 징조들>과 <신들의 전쟁>의 닐 게이먼의 히트작이자 그래픽 노블 최초로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는 오로지 그웬돌린 크리스티의 루시퍼를 보기 위해서 봤다.

그웬돌린 크리스티의 루시퍼 캐릭터포스터. 맞는데... 맞긴 한데... 좀 다르지 않았어?

EMO언더라인을 그린 강력한 꿈의 신의 파괴의 여정...을 기다리던 나는 시작부터 아마추어 마술사에게 잡힌 주인공에게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 그렇게 강한 놈이 아닌가 보지...?

<샌드맨>의 시즌 1은 2페이즈로 이루어져 있는데, 1~5화는 자유를 되찾은 주인공 모르페우스가 꿈을 다루는 데 필요한 도구(루비, 헬멧, 모래)를 되찾는 과정, 6~10화는 꿈 소용돌이(vortex)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꿈과 현실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여정이다.

[1~5화]

영원의 일족, 꿈의 왕, 이야기의 왕자, 오네이로맨서 모르페우스는(놀리고 있는 게 맞다) 아들을 살리고 싶어하는 웬 부자한테 잡혀서 1화 내내... 잡혀 있다. 나올 수 있는데 봐준 것도 아닌 듯 하다... 그냥 꼼짝 없이 잡혀 있었다. 그 동안 늙은 부자는 모르페우스의 도구를 사용해서 세를 불리고 별로 사랑 받지 못하던 그의 아들도 자라서 애인도 사귀고... 그가 늙어서 휠체어 신세가 될 때까지 100년 간을 모르페우스는 잡혀 있었다. 멋있게 탈출해서 멋있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긴 하는데 그 후로 모르페우스가 무슨 가오를 잡든 '님 그래봤자 인간한테 100년 간 잡혀 있었잖아요...' 생각밖에 안 든다.

1~5화의 메인 빌런은 존 디(John Dee)라는 백인 인셀남이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다. 4~5화를 보는 동안 시각효과를 믿고 작가진이 스크립트를 등한시 했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인셀남의 어머니 에델 크립스는 모르페우스를 가둔 로드릭(그 아마추어 부자영감)의 정부로 들어가 존을 임신했지만, 아이를 지우라는 말에 샌드맨의 도구를 훔쳐 나와서 예술품 브로커가 되어 도구의 힘으로 잘 먹고 잘 산다. 존은 루비에 사로잡혀 에델에게서 루비를 훔쳐가고, 루비의 부작용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에델은 존이 로드릭의 아이임과 자신이 훔친 도구가 샌드맨의 것이라는 걸 말해주지 않았고, 존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어머니를 향한 증오로 거짓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닿ㅎ..ㅎ.ㅎ... 엄마한테 버려져서 살인 저지르는 아들들 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원작 <샌드맨>의 출간 시기를 감안한다 치자. 하지만 <샌드맨>은 어차피 한 번은 영상화될 콘텐츠였고 지금이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아니, 사실은 좀 늦었다.

루비를 손에 넣은 존 디가 날뛰는 4~5화는 끔찍했다. <제시카 존스>에서 악명 떨치던 킬그레이브가 기껏 하는 일이라는 게 중국집 가서 아마트리치아나 시켜 먹는다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킬그레이브는 관객들에게 못난 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고안된 장치 같았다면 존 디의 경우는 존 디의 이상에 경외와 끔찍함 같은 것을 느끼라고 구성해 놓은 것 같아서 더 괴로웠다... 싱글 4명, 커플 2명이 들어와서 결국 커플 3쌍이 탄생하는 괴이한 전개(농담이 아니다)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루시퍼가 아직 안 나왔으므로!!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하는 아니 이런 제가 <샌드맨>을 보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나요? 싶은 존의 솔직담백한 메시지를 보고 있는데 또 잔인하기는 엄청 잔인해서 뜨악했다. 아무튼 모르페우스는 존 디를 물리치고 다시금 꿈세계의 왕이 된다. '꿈'으로 싸워야 하는 걸 보여줘야 하니 사실 액션 신에선 망토가 멋있게 펄럭거리거나 모래가 멋있게 사락거리는 게 다다. 검은 망토가 펄럭거리는 걸 멋지게 구현해놓은 시각효과를 보고 정신줄을 좀 놓은 게 분명하다.

 

[6~10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좀 더 재미있었다. 왕위를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계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다시 찾아왔고, 동시에 모르페우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인 악몽 코린트인을 찾아나선다.

2페이즈의 키퍼슨인 로즈.

1~5화에서 충신들 말도 처 안듣고 독선적인 데다 제멋대로인 모르페우스(작가가 자아의탁하는 캐릭터라는 게 보여서 더 차게 식었음... 닐 게이먼 젊었을 때 닮아서 더 그렇다..)를 6~10화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보듬어서 그를 좀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를 이끌어주고 소셜라이징하게 해주는 형제가 있는 반면 그를 적대시하는 형제들도 있다. 이건 시즌2를 기대하시라. 당연하겠지.

1화에서 모르페우스로부터 도망친 코린트인이 2페이즈에서 좀 더 활약하게 된다. 모르페우스가 100년 간 갇혀 있는 동안 역사적인 연쇄살인마가 되어 다른 연쇄살인마 꿈나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코린트인은, 로즈를 구슬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파괴하고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코린트인은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며 피해자의 눈을 뽑아가는 쾌락살인마인데, 이 드라마를 그나마 볼 만하게 해주는 건 그가 남자만 죽이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배신 당해서 복수를 꿈꾸는 인셀남에 이어 여자 죽이는 잘생긴 연쇄살인마가 나왔다면 드라마 <샌드맨>은 2022년엔 진짜 지옥으로 가야 한다.

보티첼리 아기천사 뭐 그런 건가???? 원래는 그냥 쌈빡한 정장 입었던데 왜 이렇게까지 컬을?????

잠깐 루시퍼 얘기를 안하고 갈 수가 없다. 포스터 보고 상상했던 비주얼이랑 약간 다른 루시퍼는 차치하고, 루시퍼와 모르페우스의 꼬리물기 게임을 보면서 아... 이게 영상화의 단점이구나 생각을 했다. 이제 CG로 뱀을 잡아먹는 기사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건 대단하지만, 상상 속에서 상대를 개념적으로 이긴다는, 설정만 보면 정말 멋진 게임인데 이걸 현실적인 영상으로 보니까 너무 웃겼다... 우주로 날아가서 나는 반물질이다 할 때부터는 거의 울었다. <샌드맨> 같은 스케일을 영상화할 수 있는 시점에 드라마가 나온 거겠지만, 범람하는 대자본 드라마들 중에 <샌드맨>의 영상미가 개중 뛰어난가 라고 물으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넷플릭스 드라마들이다 그렇듯이 <샌드맨> 또한 시즌2를 기대하세요!를 장대하게 외치며 끝난다. 너무나 진지하게 dream과 hope를 동치시켜 말하는 모르페우스를 보기에는 내가 너무... 닳고 닳았나 보다... 원작을 보지 않아 열광할 요소가 없었던 나는 그렇군... 흠.. 그렇군요... 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메시지는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데 왜 이렇게까지 잔인한 지도! 원작 팬덤이 모두 성인들일 테니 그걸 반영한 걸까? 워낙에 유명한 타이틀이고 원작자 닐 게이먼이 깊숙이 관여한 넷플릭스 화제작이니, 원작을 보지 않아도 열광할 수 있을 만한 드라마일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만큼은 아니었다. 원작을 안 본 나도 알고 있던 백인 고스걸 이미지의 '죽음'을 흑인으로 바꾸고, 조연들은 헤테로 커플보다 동성 커플이 더 많이 나오는 등 21세기 눈치를 좀 보긴 봤는데, 가장 큰 셀링 포인트인 모르페우스와 코린트인은 여전히 백인남성인 걸 보니 갈 길이 멀구나 싶다. 원작팬이 많은 인기 타이틀의 영상화/리메이크일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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