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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리어 (Lear)

  • 공연기간: 2022.03.22 ~ 2022.03.30
  • 공연장: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출연: 김준수(리어 역), 유태평양(글로스터 역), 이소연(거너릴 역), 왕윤정(리건 역), 민은경(코딜리어/광대 역), 이광복(에드거 역), 김수인(에드먼드 역) 외
  •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 연출, 안무: 정영두 / 극본: 배삼식 / 작창, 음악감독: 한승석 / 작곡: 정재일
  • 무대디자인: 이태섭 / 조명디자인: 마선영 / 음향디자인: 지영 / 소품디자인: 박현이 / 분장디자인: 정지호

물이여, 리어여- 리어여, 물이여- 

잔잔한 네 꿈은 한 줄 바람에도 쉬이 흐려지는도다



★★★★

가장 아끼던 막내딸 코딜리어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한 리어의 마음은 분노와 배은망덕함으로 넘실거린다. 충신 글로스터의 서자 에드먼드는 권력욕과 명예욕으로 가득 차, 제 몸처럼 급류를 일으킨다. 세찬 강처럼 저마다의 줄기로 흐르던 인물들은 모든 것이 끝난 후에 기다리는 고요한 바다로 나아간다.

국립창극단의 주역 김준수가 노인 리어로 분했다

국립창극단은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처럼 외국 희곡을 꾸준히 레퍼토리화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예를 다 하지 못한 딸을 내쫓고 파멸에 이르는 리어왕의 이야기는 유교에 뿌리를 둔 한국 관객들의 정서를 건드리기 좋아 보인다(아비가 인의예지와 충효를 모르는 불효막심한 딸자식을 내쫓는다고 하면 금방 우리네 이야기 같지 않은가?). 배삼식 작가의 아름다운 텍스트는 외국의 이름들을 부르면서도 이미 오랫동안 존재해 온 창극인 것처럼 유려하다. 

창자가 끊어진다, 애가 끊는다 - 이러한 정서가 가장 잘 표현되는 소리가 창이 아닌가 한다. 죽음이 난무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그 중에서도 오해와 엇갈림으로 인한 억원한 죽음이 많은 <리어>에서 목이 끊어질 듯 부르는 창은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었다. 두 눈을 잃고 에드먼드의 배신을 알아챈 글로스터의 창, 죽은 코딜리어를 바라보며 허망해 하는 리어의 창은 근래 본 어느 셰익스피어 비극의 장면들보다도 강렬했다.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코러스들이 표류하는 리어의 운명을 노래한다. 발목까지 물이 찰랑찰랑하게 잠긴 무대는 먹색 의상을 수묵화처럼 젖어들게 하고, 리어는 죽음의 강을 끊임 없이 건너는 듯 보였다. 감정이 격해지면 때때로 물을 튀기면서 뻔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를 준다.

국립창극단의 미래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노인 리어와 글로스터로 분했는데, 꼬장꼬장한 리어도 리어지만 목놓아 단장지애를 표현하는 글로스터가 압권이었다. 사신처럼 리어 곁을 맴도는 광대와 담담한 코딜리어의 1인 2역도 기억에 남는다. 에드먼드는 거너릴과 리건의 마음을 뒤흔든 악당답게 '자연은 불인(仁)이라'며 섹시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창작된 텍스트 덕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한 신선함이 있다. 특히나 창극을 처음 본다면 익히 아는 원작을 각색한 작품으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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