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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빛나는 모든 것 (Every Brilliant Thing)

  • 공연기간: 2021.12.03 ~ 2022.01.02
  • 공연장: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 출연: 백석광 / 정새별 / 이형훈
  • 원작: 던컨 맥밀란 (Duncan MacMillan)
  • 번역: 박다솔 / 프로듀서: 석재원 / 연출: 문새미 
  • 무대: 최영은 / 조명: 이동진 / 음향: 박효진 
  • 제작: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7살의 '나'는 자살을 시도한 엄마를 위해 사소하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줄무늬 양말 등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엄마의 슬픔 또한 구원해주기를 바라며.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나'는 잊고 있던 빛나는 것들의 리스트를 발견하게 된다.

*이하 일부 스포일러 있음


★★★★

의사 선생님이 늙은 강아지 셜록 본즈에게 주사를 놓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나'의 품에 안긴 셜록 본즈는 40초가 지난 후, 가벼워진다. 아니, 무거워진다. 아니, 이전과 다르게 변한다. 이것이 '나'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이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1984>, <렁스> 등으로 어느덧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던컨 맥밀란의 1인극으로, 2014년 에딘버러 프린지에서 초연했다. 초연 제작사인 PAINES PLOUGH의 프로덕션이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2017년 내한, 문화역서울284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코미디언 조니 도나호(Jonny Donahoe)가 주연한 공연 실황이 HBO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https://www.hbo.com/documentaries/every-brilliant-thing/every-brilliant-thing). 

우울증을 앓는 엄마, 그런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사소하지만 빛나는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나. 생각만 해도 울음이 나올 것 같이 눈이 시큰거린다. 겨울에 어울리는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연극. 기대한 그대로를 보여주고 그것이 나쁘지 않다.

셜록 본즈의 죽음을 슬퍼하는 7살의 '나'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관객들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위하여 '나'의 성별이나 인종을 규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극 전개에 관객들을 많이 참여시킨다. 본격적으로 연기가 필요한 정도의 역할은 주지 않지만 맡은 배역에 따라 매우 중요한 애드리브를 쳐야 할 수도 있다. 후기를 보면 그 날의 배우 뿐만 아니라 극에 참여한 관객들에 따라서도 분위기나 노선이 많이 바뀌는 듯 하다(백석광 배우는 내 옆에 앉아 내게만 말을 걸 듯 조근조근 조심히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배우가 어련히 잘 이끌어 주겠지만, 너무 부끄러움이 많은 관객이라면 호흡이 깨질 지도... 다만 모두 즉석으로 간택(?) 당하는 건 마찬가지기에 내향형 관객이라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연한 기회로 어른이 되어 다시 빛나는 것들의 리스트를 찾은 '나'는 계속해서 리스트를 적어 나간다. 이빨에 브로콜리가 꼈는지 스스럼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좋아하는 LP판의 앨범 커버를 읽는 것.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결혼도 했다. '나'에게는 리스트를 채울 빛나는 것들이 수십만 가지는 있다. '나'는 리스트를 끊임 없이 채워나간다.

그럼에도 우울이 '나'를 찾아온다. '나'에게는 빛나는 것들이 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가지나 있었지만 '나'는 우울을 피해가지 못했다. '나'의 엄마처럼. 행복이란 뭘까? 행복하다, 라는 건 완전한 상태를 말하나? 행복은 추구하고 잡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삶은 마치 거대한 우울 같다. 그 순간순간 반짝이던 것들이 행복이었나? '겨우' 그게 행복이었나,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행복이었나? 삶은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가?

행복은 삶의 사소한 순간들에서 온다, 는 흔한 메시지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행복을 그렇게 정의 내리지는 않는다. 행복을 정의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공연을 보면 알겠지만 문자 그대로 관객의 몫이다). 인생이 다 이렇지 뭐, 자조적인 농담을 숨 쉬듯이 하면서도 행복한 삶이란 평소 고민하던 주제였기에 공연이 끝나고도 생각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뻔한 내용, 흔한 형식일 수도 있겠다.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 또한 제목과 홍보문구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대로다. 하지만 객석 수도 적고 다른 관객들의 얼굴이 다 보이는 밝은 극장(객석등을 끄지 않는다)에서 내게 말을 거는 듯한 이 1인극은 관객을 넘어 개인으로서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므로, 감성을 건드리는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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