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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 (Hadestown)
- 공연기간: 2021년 9월 7일 ~ 2022년 2월 27일
- 공연장: LG아트센터
- 출연: 조형균, 박강현, 시우민 (오르페우스 역) / 최재림, 강홍석 (헤르메스 역) / 김선영, 박혜나 (페르세포네 역) / 김환희, 김수하 (에우리디케 역) / 지현준, 양준모, 김우형 (하데스 역)
- 극작/작곡/작사: Anaïs Mitchell
- 연출: Rachel Chavkin / 안무: David Neumann / 음악 수퍼바이저: Liam Robinson / 무대디자인: Rachel Hauck / 음향디자인: Nevin Steinberg & Jessica Paz / 의상디자인: Michael Krass / 조명디자인: Bradley King
- 국내협력연출: 박소영 / 국내협력음악감독: 한정림 / 국내협력안무: 홍유선
뜨거운 여름과 매서운 겨울밖에 남지 않은 혹독한 시대, 하늘 위의 신들이 버린 지상에서 인간들은 애써 살아내고 있다. 뮤즈의 아들이자 세상에 봄을 불러올 노래를 쓰는 중인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열렬히 구애한다. 세상의 쓴 맛을 다 보고 홀로 살아남아 온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순수함에 이끌려 그와 결혼하지만, 겨울이 오고 폭풍이 다가오는데도 오르페우스는 작곡에만 집중한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에우리디케는 지하 속 부유한 광산 하데스타운으로 떠나는데...
<하데스타운>을 이렇게나 빨리 한국에서 보게 된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코로나19 직전 2019년 토니 시상식에서 말 그대로 상을 휩쓴, <라이온킹>, <북오브몰몬>, <해밀턴> 등과 함께 Broadway Juggernaut 라인업에 새로이 합류한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바탕으로 2010년 컨셉 앨범으로 발매한 것에 살을 붙여 오프 브로드웨이의 뉴욕 씨어터 워크샵과 영국 국립극장 프로덕션을 거치며 가감해 브로드웨이에 올린 작품이다(<하데스타운>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코로나19로 1년 반 동안 문을 닫았던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처음으로 다시 붉을 밝힌 작품 중 하나다: https://www.playbill.com/article/a-look-inside-the-reopening-of-hadestown-on-broadway#:~:text=After%20an%2018%2Dmonth%20hiatus,Stem%20following%20the%20Broadway%20shutdown.
사람들은 뮤지컬을 왜 볼까?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연극이나 영화 쪽이 압도적이다. 노래와 춤이 있어야 하는 뮤지컬은 종종 그 때문에 서사가 흐릿해진다. 음악이 듣고 싶은 거라면 콘서트를 이길 수 없다. 결국 뮤지컬은 서사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좋게 말하면 풍성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과한 장르인 셈인데, <하데스타운>은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허용되는 세계관에서 그를 최대한 활용하여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머릿속의 메아리처럼 흐느적거리며 아카펠라로 말을 거는 세 여신이나, 하데스타운으로 돌아온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말다툼 뒤로 벽을 때리는 일꾼들의 노래가 그렇다. '노래로 세상을 구하는' <하데스타운>은 어떻게 보면 뮤지컬 서사의 이데아가 아닐까?
<하데스타운>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 독립적인 여자가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 안락한 둥지를 찾아 떠나고 남자는 여자를 찾으러 간다는, 어디서 매우 많이 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흔해빠진 이야기가 신화와 결합하면서 신선함을 주고, 더불어 보편적인 정서에 공감하게 된다. 원전 신화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에우리디케가 제 발로 지하세계를 찾아가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비중을 키우는(둘이 권태기에 빠졌다는 설정이 너무나 그럴싸하다. 페르세포네는 납치 당해 결혼하지 않았던가) 트위스트로 풍성하고 즐거운 세계를 선사한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주로 비극적인 사랑을 대표하는 신화였는데, <하데스타운>은 역사는 반복되지만 인간은 끝없이 도전한다는 요소를 넣으면서 뻔하지만 눈물 나는 인간 찬가를 더한다.
어렴풋이 자본주의에 대한 일갈도 날린다. 판을 짜고 규칙을 만들어서 그 시스템을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드는 자, 그리고 개개인이 연대해서 얻어내야 할 자유에 대해서. 하데스의 'Why do we build the wall(우리는 왜 벽을 세우는가)?'는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던 발언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실제로 <하데스타운> 런던 공연 시기와도 맞아떨어진다). 순수함으로 전체주의 사회에 파동을 일으키는 한 명의 영웅 모델은 뻔하긴 하지만,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서 벽을 세우고/평화를 위해서 벽을 세우며/벽 너머의 자들은 세울 벽과 일거리가 없어 벽 안의 우리를 시샘한다'는 가사의 통찰력은 꽤나 마음을 깊게 울린다.
<하데스타운>의 무대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즉 신들이 지배하는 지하세계와 사랑을 잊어버린 둘의 불화 때문에 더위와 추위밖에 남지 않은 지상을 배경으로 한다. 라이브 밴드가 올라가는 단상들 때문에 생각보다 아담한 목조 무대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찾을 법한 펍을 연상케 한다. 계단이 딸린 발코니는 신들이 무료하게 인간들을 굽어보는 신계였다가, 하데스타운의 문이 열리면 세트가 뒤로 물러나면서 전깃불 같은 조명이 사이사이에 위치한다. 햇빛이 내리쬐고 자연이 우거진 지상과 반대되는 것은 태양을 모방한 전깃불이 24시간 빛나는 지하의 광산으로, 하데스타운의 문이 열릴 때면 <하데스타운>의 세트는 뜨거운 오븐 속 같기도 하고 용광로 같기도 하다. 머리를 잃고 싶지 않으면(keep your head) 머리를 낮추라는(keep your head low) 일꾼들은 더러운 작업복에 헤드라이트를 매단, 근대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넘버로 말할 것 같으면 의자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당장에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춰야 할 것 같은데 가만히 앉아서 발조차 못 구르다니! 무대 위에서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하고 적막한 공기를 생생하게 가르는 화음은 이 코로나19 시대에도 마스크를 쓰고 2시간 반을 앉아있을 만한 라이브 씨어터만의 매력이 아닐까. 오르페우스의 아찔할 정도의 고음은 신까지 감동시킨 멜로디가 저런 것이구나 싶다.
<하데스타운>은 왜 이렇게 서정적인가. <하데스타운>이 비극이어서 그런 것 같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야 인간은 다시금 도전하게 되고, 다음 번 희망적인 결말을 꿈꾸게 된다. 역사가 반복되고 매일 밤 무대에 불이 켜지듯, 우린 똑 같은 노래를 계속한다. 긴 터널 속에서 작게 비치는 빛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에게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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