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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머가 아니다. 어릴 때야 PC로 큐플레이, 크레이지 아케이드, 메이플까진 접했고 모바일 게임은 간간히 하다가 마지막으로 했던 게임은 2015년 쿠키런이다. 그 이후로는 모바일 게임조차 접한 적이 없고 그 흔한 오버워치나 전국을 휩쓸었던 FPS 게임 종류도 전혀 하지 않았다. 영화와 공연 보느라 게임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덕분에 게임도 발컨 중의 발컨이다.
그러던 중 위 티저 이미지를 보게 되고... 이건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모바일 게임도 안 하는데 콘솔 게임이라니? 배트맨 아캄, 매드맥스, 데스 스트랜딩 등 플레이해 보고 싶었던 플스 게임 타이틀은 몇 있었지만 보통은 티저나 플레이 영상만 몇 개 보고 실제로 플레이해 보고 싶은 욕망이 사그라들기 일쑤였다. 그런데 발할라(의 위 에이보르)는...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콘솔을 마련하고 플레이에 뛰어들기 충분한 원동력이었다. 영화, 드라마, 공연,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컨텐츠는 다 건드려 봤지만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 담그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매체가 게임이라서, 또 생각보다 매우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는 터라 오디세이 후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나는 콘솔 게임도 처음이고 게임 형식에 대한 지식도 전무함을 참고해 달라.
여튼 발할라 티저와 트레일러가 나왔던 당시 발매일까지는 몇 달이 남아 있었고 그 전까진 오디세이로 손을 풀어(?)보기로 했다. 왜 수 많은 플스 타이틀 중 오디세이였냐면...
큰 이유 없다. 주인공 카산드라가 (심하게)멋있었기 때문이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스파르타 장군 니콜라오스의 딸 카산드라가, 어린 시절 예언에 따라 남동생을 죽이려던 신관을 살해한 죄로 버려져 케팔로니아라는 외딴 섬에서 용병 일을 하며 영웅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는 내용이다.
난이도
우선 나는 심하게 발컨이다. PC, 콘솔, 모바일, 심지어 보드게임에까지 소질이 없다. 해 본 PS 게임이 오디세이밖에 없긴 하지만, 일단 오디세이는 쉬운 편인 것 같다... 왜냐면 내가 엔딩을 봤으니까... 결코 내가 쉽게 했다는 말이 아니다 나도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은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튜토리얼(튜토리얼 분량(케팔로니아) 말고 진짜 튜토 이거 누르면 앞으로 가고 이거 누르면 때립니다 하는, 게임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튜토리얼)에서도 두 번 죽고 키 조작에 서툴러서 튜토리얼 섬을 10시간 만에 빠져나왔지만... 초반에 진도가 안 나간 거 치고는 최종 플레이타임은 지나치게 느린 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인게임에서 대사를 모두 넘기거나 너는 대화해라 나는 라면 물 올리고 올게 하고 콘트롤러를 잠시 버려 놔도, 여기에 가서 이렇게 하세요 하고 퀘스트 마크가 매우 친절하게 뜬다. 플레이 난이도도 설정할 수 있어서 사령관 급 몹도 세 번 치면 죽는 쉬움 난이도부터 잡몹한테 두 번 맞으면 죽는... 현실감 넘치는 악몽 난이도까지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물론 나는 쉬움 난이도만 했다...). 그리고 장비가 끝 없이 나온다. 어느 게임 고인물들의 세계에서는 효율성과 타격을 따지며 어떤 각인을 어디에 바르고 최강 세트템을 맞추고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그냥 개별 공격력이 제일 높은 아이템으로 나올 때마다 바꿔 입었습니다. 고인물 친구가 내 인벤토리 꼬라지 보고 안타까워하긴 했음(이걸.. 왜..? 이걸 왜 안 했어...?). 하지만 뭘 하기만 하면 경험치를 주고, 내 장비가 최고 효율이 아닐지언정 레벨 차로 바르면 된다. 공부 안 해도 게임 즐기는 데 문제 없었음.
게임의 매력
영화고 공연이고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야만 하는 컨텐츠만 접해 왔던 나는 야 이게... 이게 인터랙티브구나!! 하면서 4차 산업혁명 처음 맞는 사람처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영상매체에서 선택권을 준다고 해 봐야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정도고 공연에서 선택권을 준다고 해 봐야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정도인데, 오디세이에서는 내 선택에 따라 결과가 바뀌고, 퀘스트도 달라진다(물론 선택권을 주지 않고 정해진 서사의 진행과 발전에만 집중하는 게임도 있다고 함). 당연하지만 내가 실제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이 차원이 달라서 꼭 해 봐야 하는 경험이었는데 지금껏 미뤄왔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게임에 무지했던 나는 DLC(다운로더블 컨텐츠)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게임이 발매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후속 컨텐츠를 낸다고...? 하나의 컨텐츠를 발전시켜 계속 뽑아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싶었음. 모바일 어플을 사용하면서 최근엔 보드게임에도 이런 시도들이 나오고 있고... 또한 어쌔신 크리드는 연구와 고증을 열심히 한 걸 허투루 써먹지 않고, 전투 없이 각 지역 또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디스커버리 투어라는 교육용 모드를 함께 낸다. 오디세이는 기원전 4세기, 펠레폰네소스 전쟁 당시의 그리스를 다루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또는 테르모필레 전투 등 고대 그리스에 대한 환상과 애정이 있다면 정말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다. 파르나소스 산을 오르고 낙소스 섬에 가는데 즐겁지 아니하랴... 나는 진짜 너무 즐거워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오디세이는 외딴 섬의 일개 용병이었던 카산드라가 그리스 전역을 피로 물들이며(...) 악명을 떨치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몰입하기 딱 좋은 서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 행동의 동기는 잃어버린 가족이라는 (과몰입하기 좋은)개인적인 이유고, 이것이 당대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뒤에서 조종하던 코스모스 교단이라는 악과 맞물리면서 흥미롭게 진행된다.
캐릭터의 매력
오디세이는 남동생 알렉시오스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데(알렉시오스로 플레이할 경우 카산드라가 동생), 알렉시오스로 해 본 적이 없으니 카산드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카산드라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에 근육질이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보다 온건하거나 잔인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거칠고 호탕하다(물론 이면엔 따뜻한 면모도 있다). 그야말로 영웅호걸 그 자체인 카산드라로 플레이하는 경험은 굉장히 짜릿했다. 숨겨진 고귀한 혈통에, 빼어난 능력으로 남들로부터 추앙 받고, 색을 탐하는 것조차 책 속에서 보던 영웅 그 자체다. 여자를 시민으로... 취급해주지도 않던 고대 그리스지만 여자가 용병 일을 하며 이름을 떨치는 데에 게임 내 아무도 의문을 품지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전형적인 영웅의 면모를 지닌 카산드라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캐릭터 빌딩이나 서사 진행에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는 점 모두 의의가 있다. 오디세이라는 타이틀처럼 온전한 전설의 길을 밟아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오픈월드 & 플레이타임
오디세이의 맵은 넓기도 넓거니와 물음표 살인마가 따로 없다. 오디세이는 강철 같은 카산드라의 육체로 절벽을 오르고 바다를 건너(진짜임) 맵의 물음표를 지워가는 과정이다. 퀘스트를 수행하려면 자연히 발 딛게 되는 지역도 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 상 여기에 꼭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시면 새로운 장소와 경험치와 메인 스토리와는 상관 없는 사이드 퀘스트를 드리죠' 하는 미지의 지역들이 엄청나게 많다. 메인 퀘스트만 죽죽 밀고 나갈 수도 있고, 느긋하게 한 지역을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횡단할 수도 있다. 스토리만 본다면 더 빠를 수 있겠으나... 잡다한 사이드 퀘스트와 수집 요소를 곁들여 플레이하면 플레이타임은 80~100시간 걸린다고 한다. 오직 오디세이와 발할라를 하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을 구매한 나로서는 플레이타임이 긴 게 오히려 한 타이틀을 진득하게 플레이할 수 있어서 좋았다(하지만 발할라는 너무 길다 이거 언제 끝나냐??). 그리고 메인 스토리를 본 후에는 지금까지 획득한 아이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스토리를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한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엔딩 종류도 여러 개라, 나도 발할라를 얼추 끝내고 나면 2회차를 플레이 해 볼 예정이다 .
결론
오디세이는 게임 뉴비들에게도 어렵지 않다(나는 정말 심각하게 게임을 못 해서 엔딩도 못 볼 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게임이랑 담 쌓고 영상/공연 매체만 소비하던 나에게는 몰입도, 인터랙티브한 서사, 발전한 그래픽 이 모든 것이 놀라움과 재미의 연속이었다. 타이틀은 매번 할인을 때리기 때문에 일단 콘솔만 갖추면... 심적, 물리적 준비는 끝난다. 주인공의 서사? 100시간을 투자할 가치 완전 있다. 이 타이틀을 위해 콘솔을 구비할 가치? 일단 내가 그러기도 했고, 도전할 수 있는 게임의 폭이 넓어지고 오디세이만 해도 100시간 동안 씹고 뜯고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긍정적이다. 새로운 장르를 접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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