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포일러 없음
당초 3월 발매 예정이었던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첫 번째 확장팩 '드루이드의 분노(Assassin's Creed Valhalla: Wrath of the Druids)'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한 뒤 2021년 5월 13일 00시에 발매되었다. 정착지 레이븐소프를 도시로 발전시키고, 고대 결사단을 끝장내고 오만 도시들과 동맹을 맺어 사실상 잉글랜드를 평정한 에이보르는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더블린 왕의 부름을 받고, 상인 아자르와 함께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다.
저마다 왕을 칭하며 겨우 마을 동사무소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군소 왕국들이 난립하던 가운데 플란 시나 대왕이 아일랜드를 최초로 통합하려 하고 있었고, 자신을 부른 더블린 왕은 사실 에이보르의 외사촌 바리드였던 것. 플란 시나의 눈에 들어 통일된 아일랜드에서 영향력을 구가하려 하나 이교도를 싫어하는 플란은 바리드를 냉대하고, 에이보르는 가족의 은인 바리드가 아일랜드에서 한 자리 해먹을 수 있도록 플란에게 노르드인의 불주먹을 빌려주기로 한다.
다들 켈트 신화가 뭔진 잘 몰라도 쿠훌린과 게이볼그, 뒤어미드 정도는 친숙할 것이다(발할라 DLC를 하는 인구와 페이트 향유층이 많이 겹치리라 확신한다. 켈트 신화를 페이트로 배웠어요). 그래서 켈트족이 누구인가? 켈트족은 인도-유럽어계 민족으로 기원전 5~6세기에 처음 출현하여, 전성기였던 기원전 5세기와 3세기 사이에는 스페인, 잉글랜드를 비롯 로마와 그리스, 터키 갈라시아 지방까지 진출했었다. 이후 로마와 게르만인, 이후 기독교도들에 의해 쇠락한 민족이기도 하다. 기원전 융성했던 민족이기에 켈트 신화와 문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로마화, 기독교화 되어 그 원형을 제대로 찾기가 힘들다. 일례로 가장 잘 알려진 아서왕과 성배의 전설은 대표적으로 기독교 색채가 많이 입혀진 켈트 신화다. '켈트 신화'라 하면 게일 신화와 브리튼 신화로 나눌 수 있는데, 영웅 쿠훌린, 핀 막 쿨과 페니안 등이 게일 신화의 가지를 이루고 브리튼 신화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단, 그리고 성배 전설을 다룬다. '드루이드의 분노'는 이 중 게일 신화의 투아하 데 다난과 드루이드교 소재를 따 왔다.
본래 대륙에서 건너와 잉글랜드 전역에 거주하던 켈트인들이었지만 전 유럽을 휩쓴 게르만인들에 밀려, 지금은 서쪽 끝인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에 켈트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새로운 정착지, 더블린에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데인족과 노르드인들이 더블린의 왕 자리를 두고 오랜 시간 싸우기도 했었고, 더블린을 아일랜드의 무역 허브로 삼아 최초로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 잉글랜드를 잇는 교역 루트를 만들기도 했던 바이킹의 영향력이 강한 도시다. 에이보르가 아일랜드를 방문한 9세기에 고대 켈트 신화는 이미 로마와 게르만인,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일부만 믿는 토착 신앙 정도로 쇠퇴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리드 막 이마이르라는... 노르만+아이리쉬 짬뽕탕 이름을 가진 에이보르의 사촌은 플란 시나 대왕의 음유시인 키아라가 사절로 와 있다며, 술 취해 문제 일으키기 전에 그를 찾으라는 첫 임무를 준다. 고대 켈트인들에게 음유시인들은 무장 다음 가던 특권층이었으니, 플란의 사절로 온 키아라의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른 NPC에 비해 압도적으로 힘을 준 모델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키아라가 이번 DLC의 메인 조연 중 하나다.
플란 시나는 역사 속 실존한 인물로 아일랜드의 대왕, 또는 타라의 왕이라고 불렸으며 랜스터를 시작으로 먼스터, 얼스터, 코노트의 왕들에게 인질(현대와 인질과 같은 의미는 아니고 협정의 의미로 왕족의 사람을 데려와 잘 대접했다고 한다)을 요구하면서 아일랜드 왕으로서는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882년에는 아일랜드의 침략자들이던 노르드인들과 아이리쉬들을 모아 북쪽의 아마를 침략하기도 했다(본편이 872년 시작하여 엔딩까지 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 있으니, '드루이드의 분노'의 배경도 이 즈음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대왕(High King)'이란 난립하던 군소 왕들을 통치하던 한 명의 상위 왕을 뜻하며, 대왕의 대관식은 땅의 여신과 결합하는 신성한 의식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맘 편히 대관식 할 수 없겠죠? 이교도 주제에 등 따숩고 배 부르기 위해 수도원을 짓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바리드는 다누의 아이들이라는 컬트 교단의 습격을 받는다. 인게임 문서에도 나오는 '투아하 데 다난', 즉 '여신 다누와 그 가족'은 아일랜드의 신족으로, 대륙에서 아일랜드를 침략해 와 아일랜드의 새로운 주민이 되었다. 켈트 신화 중 켈트족의 창조신화와 그 근원을 찾으려는 <침략의 책>은 아일랜드에 외부의 침략이 반복되면서 자리 잡은 원주민과 침략자가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파르톨론인 → 네메드인 → 피르 볼그인 → 투아하 데 다난 → 밀레시안의 순서로 아일랜드에 이주한다. 여기에는 파르톨론인, 네메드인, 투아하 데 다난이 모두 맞서 싸운 '혼돈과 태고의 밤'의 자손이자 바다 밑바닥에 사는 기형인 포모르인들도 있다.
게일족의 신 또한 낮, 빛, 생명, 풍요 즉 선善의 신들이 있고 밤, 어둠, 죽음, 불모 즉 악惡의 신들이 있는데, 이 중 선의 신들은 여신 다누(Danu)와 그 가족들이다. 악의 신들은 깊은 바다의 신인 여신 돔누(Domnu)를 따랐다. 따라서 다누의 아이들이 빌런으로 나왔을 때는 조금 의아했다. 드루이드교와 마법을 부리던 드루이드 사제들은 고대 켈트 신화에 등장하던 존재들이니, 이미 로마제국의 지배로 한바탕 짓밟히고 잇따라 밀고 들어온 기독교로 인해 명맥만 겨우 유지한 채 사라져가던 토속 신앙이 외부 세력에 대항해 공격성을 띄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드루이드교는 원래 인신공양을 했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머리를 중요시 여기는 종교이긴 했다.
플란의 대관식을 거행한 타라의 언덕(Hill of Tara)은 고대 켈트 신화에서 신성한 의미를 갖는 언덕이다. 아일랜드에 새로 정착하기 위해 원주민인 투아하 데 다난에게 도전장을 내민 밀레시안(신神인 투아하 데 다난들과 달리 밀레시안들은 인간을 대표하며, 결국 밀레시안들이 투아하 데 다난과의 전장에서 승리하고 아일랜드에 정착함으로써 인간의 시대, 그리고 아일랜드의 역사가 시작된다)들 중에 에베르와 에레몬 형제가 있었는데, 밀레시안의 승리 후 아일랜드를 균등하게 두 부분으로 나눠 에레몬이 남쪽을, 에베르가 북쪽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일년 후 에베르의 아내가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언덕을 요구하고, 그 중에는 에레몬이 소유한 타라의 언덕도 있었다. 에레몬의 아내가 이에 분노하여 형제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에베르가 전사, 에레몬이 홀로 왕위를 차지하였다. 이후 대왕의 대관식은 타라의 언덕에서 거행되는 관습이 생겼다. 또한 대관식 후 언급하는 키아라가 언급하는 리아 폴은 투아하 데 다난이 아일랜드로 이주하면서 들고 온 돌로, 진정한 왕이 손을 대면 말을 한다는 마법의 돌이라고 한다.
바이킹은 795년 처음으로 아일랜드 수도원을 침략, 30여 년 간 소소하게 털어먹다가 830년대에 이르러 대규모 레이드를 벌이기 시작했다. 플란이 아일랜드를 쑥대밭으로 만든 바이킹들을 싫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과거 드루이드 사제였으나 자신의 힘을 악용하려는 교단에서 도망쳐 나온 키아라는, 플란을 곁에서 도와주면서 드루이드들과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려 한다. 에이보르가 플란을 도와 신임을 얻으려는 찰나 플란의 막사에서 데인족을 제외한 아일랜드 병사들만 독에 중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에이보르는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다누의 아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아일랜드의 맵이다. 메인 스토리만 밀면 9시간, 전체 맵을 클리어한다면 20시간 정도면 끝나는 본편에 비하면 귀여운 분량의 DLC이다. 더블린은 메인 정착지로서 레이븐소프와 동일하게 대장간, 상점, 문신소, 레다 상점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추가 콘텐츠로 아자르의 상점과 교역소가 있다. 아일랜드 전역에 거래소(더블린 빠른 이동 표시 위에 있는 원형 마크)가 있는데, 바이킹의 습격으로 황폐화 된 상태라(?) 에이보르가 거래소의 잔병들을 처리한 후(??) 근처에서 거래소 증서를 찾아오면 거래소를 복구할 수 있다. 수도원을 습격하면 얻을 수 있는 보급품으로 거래소에 3가지 건물을 건설할 수 있는데, 거래소마다 진미(아직도 이게 뭔지 잘 이해를 못 했다 오징어 아니지요?), 문서, 옷감 등 자원을 생산한다. 이 자원들을 더블린에 있는 아자르의 상점으로 들여와, 더블린에서 에이보르가 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 획득한 자원으로는 아자르의 상점에서 은화, 아머, 정착지 팩 등을 획득한다. 더블린을 무역 허브로 만든 것은 맞으나 결국 레이븐소프의 사냥터, 낚시터 퀘스트와 동일하다. 다만 거래소가 많아질수록 더블린의 명성이 높아지고 자원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며, 명성이 올라가면 자원의 최대 보관 개수가 늘어난다. 자원이 다 차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정착지로 돌아와 자원을 파밍하고 있자니 건물 열심히 지어서 시간 맞춰 생산품을 쏙쏙 먹어야 하는 쿠킹덤이나 심슨월드 등의 모바일 게임이 떠올랐다... 사실 별로 재미는 없는데 얻을 수 있는 새 아머와 문신이 엄청나게 많다.
내용은... 굉장히 평이하다. 컷씬과 그래픽이 아름다웠지만 내용에 평점을 굳이 주자면 유잼, 평잼, 노잼 중 노잼에 들어간다. 드루이드교를 쇠퇴하다 변질되어 버린 컬트의 잔재 정도로 표현한 것도 아니고 명백하게 원주민 vs 침략자 구도로 만들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스토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내용이 재미가 없다... 반전(이랄 것도 없지만)은 뻔히 예상이 가고, 캐릭터 사용은 소모적이고 전형적이다. 내가 지금 켈트 신화 디스커버리 투어를 하는 건지 게임을 하는 건지... 거래소와 더불어 새로 추가된 비둘기장(레다 상점 퀘스트 같은 건데 오팔 대신 자원을 준다) 퀘스트는 플레이타임을 늘리기 위한 뺑뺑이 퀘스트인 듯 하고, 내용은 재미가 없고 짧은데 얻어야 하는 아머와 장비는 많아서 차갑게 식은 눈을 하고 거래소를 뚫고 비둘기장 퀘스트를 하고 있다... 본편은 동맹 퀘스트가 너무 길고 많았을 뿐 메인 스토리 라인(물론 현대파트는 제외한다)인 가족 엔딩과 결사단 엔딩은 즐겁게 봤는데, '드루이드의 분노'의 스토리와 캐릭터들은 너무 2000년대 초반의 향기가 난다... 특히 키아라가... 얼굴 만들고 탈진해서 스크립트를 퇴고하지 않은 것일까? 캐릭터도 얼마 없는데 성비가 너무 남초라 본편보다 더 ^남자를 위한 스토리^ 분위기가 심했다. 이제부터는 음유시인 같이 권력의 곁다리 말고 대왕을 여자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다누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디어드레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발로르와 싸워 이기면 게볼그를 얻을 수 있다! 발로르는 아일랜드의 신들과 맞서 싸웠던 포모르인들의 왕이자 죽음의 신이다. 눈이 두 개 있지만 한쪽 눈은 독을 뿜어내 시야에 닿는 사람을 모두 죽이기 때문에 항상 감겨 있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의 발록이 발로르를 모티브로 했다는 설이 있다.
게볼그는... 페이트를 봤다면 다 알겠지만 바다 괴물의 뼈로 만든 쿠훌린의 창이다. 얼스터의 붉은 가지 용사들 중 가장 위대한 영웅 쿠훌린의 신화 중 유명한 이야기는 '쿨리의 가축 약탈'로, 코노트의 여왕 메브가 얼스터의 갈색 황소를 빼앗기 위해 벌인 전쟁에서 벌인 활약을 그린다. 신의 두 돼지치기가 모습을 바꿔 싸우다 못해 장어로 변해 싸우다가 소에게 먹히게 되는데, 한 마리는 얼스터의 갈색 황소, 한 마리는 코노트의 하얀 뿔 황소로 태어난다. 여왕 메브는 남편 알릴의 하얀 뿔 황소에 견줄 만한 갈색 황소를 빼앗기 위해 아일랜드 전역에서 군대를 모아 얼스터를 치지만, 얼스터를 지키기 위해 출전한 쿠훌린의 활약에 목숨만 부지해 도망친다. 쿠훌린은 메브의 끝도 없는 화친 전갈에 지치다 못해, 자신이 아일랜드의 전사 한 명과 싸워 결투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군이 진군할 수 있으나 자신이 적을 죽이는 순간 진군은 다음날까지 멈추기로 하는 조건을 내건다. 쿠훌린은 매일매일 다른 전사와 전투를 벌이다 나중에는 옷이 살에 닿는 것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상처로 뒤덮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페이트를 봤다면 알겠지만 주군의 아내 그라니아와 바람이 난 매력점의 디어뮈드 오 뒤나도 게일 신화의 영웅이다. 다만 디어뮈드보다는 그 주군인 핀 막 쿨이 압도적으로 유명하다. 핀의 무리들 이란 뜻인 '페나 에이린', 또는 '페니안'의 우두머리 핀 막 쿨은 쿠훌린과 붉은 가지 용사들과 달리 역사 속 실존 인물에 바탕을 두었다는 설도 있다. 페니안이 되기 위해서는 믿기 힘든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해야 했으며, 전투 뿐 아니라 인품 면에서도 완벽해야 했다고 전해진다.
총평하자면 '드루이드의 분노'는 바이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일랜드를 통해 켈트 신화를 소개한 평잼작이다. 다만 북유럽 신화도 발할라 본편에 녹아들기보다 단순 설명을 해 주는 느낌이 강했는데, '드루이드의 분노'도 마찬가지다. 신화 도장깨기도 아니고 발할라에서 굳이 켈트 신화를 이만큼이나 가져와야 했나 싶은 생각도 있다... 2차 DLC를 위해 새로운 아머와 장비만 열심히 파밍한 느낌? 아머, 정착지 팩, 장비 등을 모두 얻은 후에 아자르의 교역소에 가면 은화로 바꿔줘서 쉽게 돈을 불릴 수 있지만 아일랜드 맵 이동 로딩이 너무 느려서 굳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드루이드의 분노'는 스핀오프마냥 현대 파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는데, 이렇게 재미 없는 DLC를 하고 나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던 발할라 현대 파트가 2차 DLC인 '파리 포위'에서 어떻게 풀릴 지 걱정과 우려 뿐이다... 사실 그 노잼작을 가지고 이렇게 열심히 후기 쓰고 있는 내 인생이 제일 걱정이다.
켈트 신화에 대한 정보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과 <켈트 신화와 전설> (찰스 스콰이어, 2009)을 참조했다.
'PS4 Gam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포 有)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관련 바이킹 역사 지식들 (0) | 2021.02.02 |
---|---|
(스포 無)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관련 바이킹 역사 지식들 (0) | 2021.02.02 |
게임 쌩초보의 스포 없는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PS4 후기 (1) | 2020.12.28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