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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최신작,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바이킹 전사 에이보르의 잉글랜드 정착을 다룬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전사들의 전당 '발할라'나 오딘, 토르 등 북유럽 신화 요소도 차용하고 있지만, 온 유럽 대륙을 공포에 떨게 했던 바이킹들의 실제 역사에 기반한 내용이 많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를 하면서 바이킹 책을 읽고 웹을 뒤지다 보니, 알고 있으면 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이 많아 공유한다. 

게임을 끝낸 뒤라면 스포 있는 버전이 있다: bibc.tistory.com/101

 

(스포 有)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관련 바이킹 역사 지식들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최신작,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바이킹 전사 에이보르의 잉글랜드 정착을 다룬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발할라나 오딘, 토르 등 북유럽 신화 요소도 차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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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 로스브로크

게임 내내 주구장창 이름이 나오고, 드라마 <바이킹스>로도 친숙한 라그나르 로스브로크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다. 9세기 수차례에 걸친 신성로마제국과 잉글랜드 침략을 통해 명성을 쌓은 전설적인 대니쉬-스웨디쉬 바이킹 전사 라그나르는, 845년 프랑크 왕국을 침탈하여 파리를 점령하고, 물러나는 댓가로 대머리왕 카를에게 6,000파운드의 은화를 받은 걸로도 유명하다.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탓에, 라그나르 로스브로크가 역사 기록에 최초로 등장한 실존했던 바이킹 전사로 꼽히기는 하지만 라그나르의 기록에는 전설이나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섞였으리라 생각되고 있다. 또한 라그나르의 아들들, 이바르(Ivar the Boneless)(게임에서 우바의 동생이었던 것과 달리 이바르가 장자이다. 라그나르의 아들들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다), 우바(Ubba Ragnarsson), 하프단(Halfdan Ragnarsson)이 이교도 대군세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략하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눈 속의 뱀 시구르드(Sigurd Snake-in-the-Eye) 또한 원래 라그나르의 아들 중 한 명으로, 게임에서는 이름만 따왔다(드라마 바이킹스에서는 라그나르의 아들로 나왔다). 

라그나르 로스브로크와 그의 아들들은 데인족으로, 오늘날의 덴마크와 스웨덴 지역에 걸쳐 있던 지역 출신이다. 반면 게임에서 몇 번 강조되는 것처럼 에이보르는 노르웨이 출신의 노르드인이다. 

노르웨이

스튀르비요른 왕이 충성을 맹세한 금발의 하랄드(Harald Fairhair)는 최초로 노르웨이의 부족들을 통합해 왕국을 세운 왕이다(872년으로, 건국 시기도 일치한다). 하랄드한테는 아들이 적어도 스물은 있었는데(열심히 살았구만) 그 중 피 묻은 도끼 에릭(Bloody Axe Erik)이 유명하다. 하랄드가 에릭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하자 에릭의 배다른 두 형이 항의하고, 에릭은 도끼로 그들을 베어 버린다. 다른 두 형제가 또 군대를 보내지만,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결국 무력으로 왕이 되었으나, 그의 잔혹함 때문에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하랄드의 막내 아들 선한 하콘(Haakon the Good)이 왕위를 잇는다.

덴마크에 비해 노르웨이가 높은 산봉우리가 더 많고 훨씬 척박한 땅이라고 한다. 에이보르가 괜히 따뜻한 잉글랜드에 만족한 게 아니다.

 

바이킹의 문화

바이킹들은 스스로를 바이킹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바이킹'은 해적질, 노략질 등의 의미로 '우리 바이킹 하러 가자!'처럼 행위를 가리키는 데 쓰이지 특정 사람들을 가리키는 어휘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이킹 시대에 살던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대부분 정착지를 떠나지 않았다. 바이킹들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여러 소수민들이 섞인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리 대비해두지 않은 이들에게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은 매우 혹독했고, 자원과 식량이 희소하여 환대를 매우 중요시했다고 한다. 호스트가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대대손손 혈투를 벌일 구실이 되기도 했다. 축제 때는 진탕 마시고 서로 취하지 않은 척 하며 위트를 뽐내는 경연을 헀는데, 보통 에일이나 벌꿀주를 권하면 노약자가 아닌 이상 무조건 마시는 게 예의였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한다.

플레이타임의 40% 정도는 취해 있는 듯한 에이보르도 술 마시고 플라이팅을 하는 이벤트가 있다

10세 이전에 죽는 아이가 많았고 열 살 이후에도 살아남으면 오십대까지는 살았다고 한다. 평균키는 남자 약 5'8(172cm), 여자5'3(160cm)로 월등히 큰 편은 아니었지만 당대 접촉했던 남쪽의 인종들에 비해서는 큰 편이었다.

에이보르 게임 내에서 지나가던 색슨족 NPC보다도 작게 나오는데 공식 설정 6피트(183cm)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큰 거라고 한다... 그게 말이 되냐 그게

여남의 지위가 동등한 것은 아니었으나, 동시대 크리스천 국가들보다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당연하겠지...). 남자는 여자 노예는 물론 동성 애인을 두기도 했고 한 집에 같이 살기도 했는데, 부인들은 남편의 바람은 참아줘야 했지만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했을 경우(3년간 부부관계가 없었을 경우) 이혼을 요구, 지참금과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여자가 중대사를 돌봤다. 

게임에서는 바이킹 장례식이 2번 나오는데, 발할라로 떠나는 불 타는 배는 어떤 아랍인 작가가 스웨디쉬 바이킹들의 장례 방법을 보고 기록으로 남겨서 유명해졌다. 배에 불을 붙이는 장례도 행해졌지만 대부분 동물 가죽, 보물, 노예와 함께 매장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장례선의 경우 장례용으로 배를 하나 통째로 만들어서 버려야 했기 때문에 부유하고 권력 있는 이들만 이러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바이킹의 전투

바이킹 레이드가 가장 공포스러웠던 이유는, 일반 선박과 달리 얕은 해안가에도 정박할 수 있고 냅다 들어서 강에도 띄울 수 있는 좁고 가벼운 롱쉽에 있었다. 선체가 파도를 같이 넘도록 설계돼 있어 다른 함선에 비해 5배 이상 빨라, 보통은 군대를 집결해 파견하기조차 전에 다 털고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바이킹의 습격 스타일 또한 공격력보단 스피드가 메인으로, 일반적인 레이드는 몇 척의 롱쉽과 100명 정도의 전사가 다였다. 하지만 수가 많지 않아 넓은 평원에서 싸우면 금방 제압되었고, 바이킹들도 습격 시에 강가나 해안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게임의 요툰헤임 선박 도안을 입힌 롱쉽

당대 유럽에서 통용되던 갑옷(링메일)이 바이킹들에게는 보급되지 않아, 색슨인들이 바이킹들을 일컬어 '벌거벗었다'고 할 정도로 무장이 조악했고 바이킹들은 시체에서 투구와 무장을 벗겨 걸치기 바빴다. 오직 하나, 최초로 주조한 대장장이의 이름을 따서 검 자체의 이름이 된 울프베르트라는 바이킹 검만은 속도와 가벼운 무게, 부러지면 쉽게 붙일 수 있는 편리성 덕에 유럽의 무기에 뒤지지 않았다. 보통 가문의 유산으로 대대로 내려왔다고 한다. 검은 만드는 비용이 비싸 권력자들의 것이었고, 대부분은 도끼나 창을 들었다.

울프베르트 검. 검신에 브랜딩이 되어 있다. 카롤링거 검(아래)에서 발전하였으며 9세기에 많이 쓰였고, 이후 롱소드로 넘어간다.
게임에서도 얻을 수 있는 카롤링거 검. 카롤링거 왕조 시대 프랑크 왕국에서 생산되었으나, 무역이나 약탈, 인질과의 교환 등으로 바이킹 무덤에서 대거 발견돼 '바이킹 검'이라고 불렸다.
흔히 쓰이던 미늘도끼(bearded axe). 도끼날의 아래쪽을 연장하여 위쪽으로 단단히 잡을 수 있고, 베는 면적을 넓히고 전체 무게를 줄였다. 무기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쓰여서 여자들도 가지고 다녔다. (사진은 물론 제품샷입니다)
데인 도끼(Dane Axe). 한 손으로 쥐고 던질 수 있는 미늘도끼와 달리 길고 무거워서 양손으로 잡는다. 게임에서 쌍수 스킬을 찍고 양 손에 데인 도끼를 들면 도끼무쌍 바이킹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킹의 진짜 무서운 점은 유연성과 적응성이었다고 한다.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을 파악해 재빠르게 이용했고, 몇십 몇백이 동맹을 맺고 대규모 군대를 형성했다가도 금세 자발적으로 해체되어, 바이킹들을 내부적으로 이간질하는 건 불가능했고 적들은 어디를 방어해야 할 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또한 바이킹들은 당대 마주한 적들에 비해 매우 실용적이었고, 프랑크 왕국의 귀족들과 달리 흙을 파서 함정을 만드는 등 손을 더럽히는 육체 노동도 꺼리지 않았다. 이전의 바바리안들은 교회는 피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바이킹들은 외려 보물과 값나가는 인질이 모이는 축제 기간을 노려 타겟으로 삼고, 교회를 점령해 임시 요새로 쓰기도 했다.

 

색슨족이 바라본 바이킹

처음 잉글랜드를 습격한 것은 데인족보다도 노르드인들이 먼저였지만, 이후 데인족이 잉글랜드 해안가에 하도 자주 출몰하여 앵글로 색슨족들은 모든 바이킹들을 출신지에 관계 없이 데인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게임의 묘사가 정확하다!). 또한 바이킹들을 물러나게 하는 댓가로 뇌물을 바치는 것도 횡행하여, '데인겔드(데인족의 금)'이라는 말이 따로 있었다. 루아르 섬의 어느 수도원에서는 819년부터 836년까지 매년 약탈 당한 탓에, 수도사들이 봄~여름에는 수도원을 비우고 레이딩 시즌이 끝나면 돌아오는 게 연례행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익숙할 잉글랜드 7왕국. 주요 4대 왕국(머시아, 노섬브리아, 웨섹스, 이스트 앵글리아)과 3대 소왕국(켄트, 서섹스, 에섹스)으로 나누어진다. 서섹스 소왕국 주제에 보물이랑 수수께끼 왜 그렇게 많았던 건데???

이교도 대군세

게임에서 묘사되듯이 라그나르 로스브로크의 아들들의 명성을 전역에 떨치게 한 사건이다. 865년 이바르하프단우바, 노르웨이의 올라프(Olaf the White)와 함께 더블린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이교도 대군세, The Great Heathen Army) 잉글랜드로 향한다. 이스트 앵글리아에서는 아무런 저항 없이 돈을 모아 바쳤지만(잉글랜드 내 첫 번째 데인겔드다), 이바르는 돈은 받았으나 떠날 생각은 없었다. 이바르는 이 참에 잉글랜드에 정착해서 스칸디나비아의 세력가들과 싸워보려 했고, 올라프는 전쟁이 끝나면 이바르와 지배권을 두고 싸웠던 더블린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당시 노섬브리아에는 라그나르 로스브로크를 죽여 뱀구덩이에 던져넣은 엘라 왕(Ælla)이 즉위했고, 이바르는 이스트 앵글리아와 주변 도시들을 알뜰살뜰 털어먹고 고대 로마 가도를 이용해 풍요로운 도시 요르비크를 먹을 겸 원수도 갚을 겸 노섬브리아로 진격하게 된다.

이바르 그냥 미친 놈인 줄 알았는데 되게 유명한 애였다

이바르는 온갖 함정을 설치해 놓은 성 안으로 엘라 왕을 꾀어내 죽이고, 엘라를 블러드이글 형에 처했다고 한다. 게임에서도 나오듯이 폐를 갈라 독수리의 날개처럼 펼치는 형이었으며, 후대로 갈수록 역사가들이 더욱 자극적으로 양념을 가미해 이바르가 엘라 왕의 상처에 소금을 쳤다(...)는 썰도 있고, 잉글랜드 교회들이 포로로 잡은 바이킹들의 껍질을 벗겨 문에 발라놓았다는 묘사도 있다고 한다(명색이 교회인데...).

노섬브리아를 먹은 바이킹(이후로도 바이킹들의 주 근거지는 노섬브리아가 된다.)들이 머시아로 남하하자, 머시아의 왕 부르그레드(Burgred) 왕은 웨섹스의 왕 아델레드(Æthelred)에게 도움을 청한다. 

레데체스터샤이어에서 빵칼로 덤비다 에이보르한테 맨주먹으로 처맞았던 부르그레드왕. 에이보르의 '나한테 버터라도 바를 셈인가?'라는 명대사를 쥐어줬다. 

이바르는 아델레드의 대군을 보고, 성벽 뒤에 숨어 자신들보다 앵글로 색슨군의 식량이 먼저 고갈되기를 기다리며 존버한다. 대부분 농민이었던 웨섹스 군대는 추수철이 다가오자 귀환해 버리고, 남은 머시아군 또한 식량고갈과 낮은 사기로 고생한다. 이바르는 부르그레드와 협정을 맺고 요르비크로 철수하고, 잔군을 노섬브리아에 주둔시킨 후 더블린으로 돌아간다. 이후 몇 년간은 짧은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 여기서 머시아를 도와주러 온 웨섹스의 아델레드 왕이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의 형이다.

869년, 이바르가 남아있는 잉글랜드 영토를 털어먹으러 귀환한다. 바이킹들의 본거지인 노섬브리아 및 평화협약을 체결한 머시아 외에, 남아있는 웨섹스와 이스트 앵글리아 중 해안에 인접해 있고 잉글랜드를 가로지르는 강줄기로 이어지는 이스트 앵글리아가 이바르의 레이더에 들어온다. 우바는 로마 가도를 따라 육로로, 이바르는 해상으로 이스트 앵글리아로 향한다. 이스트 앵글리아의 왕 에드먼드는 무지하게도 이바르에게 개종하지 않으면 절대 항복할 수 없다고 헀고... 이 말에 굉장히 열 받은 이바르는 에드먼드 왕을 나무에 묶어 놓고 부하들에게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얼마만큼 화살로 맞출 수 있는지 시험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고슴도치마냥 되었을 때 왕의 목을 베었다(으!)

이스트 앵글리아 노스윅에 있는, 화살이 꽂혀 있던 죽은 에드먼드 왕의 왕좌

더블린은 물론 노섬브리아, 머시아, 이스트 앵글리아까지 정복한 이바르 라그나르손은 아일랜드와 브리튼의 모든 노르드인의 왕이라 불렸고, 873년 부와 영광 속에 편히 눈 감았다고 한다. 

 

알프레드 대왕

하프단이 노섬브리아에 잔류하던 군대를 이끌고 유일하게 남은 웨섹스를 털어먹으러 오고, 알프레드와 아델레드 형제가 이에 맞서나 급조한 농민군으로 구성되어 점점 전장을 이탈하는 앵글로색슨군과 달리 바이킹들은 각지에서 배를 타고 나타나 머릿수를 채웠다. 거기에 구스럼(Guthrum)이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면서, 웨섹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급발진해서 화내더니 별 영양가 없는 조언을 해 줬던 구스럼

이 와중에 아델레드가 전사하면서 알프레드는 스물 셋의 나이로 즉위하게 된다. 알프레드는 하프단에게 평화 협정을 제의하고, 하프단은 정착의 필요성과 웨섹스전에서의 손실을 감안해 이를 받아들인다. 룬덴으로 군을 물린 하프단은 웨섹스를 구스럼에게 넘겨주고, 노섬브리아로 돌아가 정착해서 왕 노릇을 한다.

878년 알프레드 왕은 웨섹스 대부분을 잃고 망명하였다. 아버지 에델울프(Æthelwulf)나 형 아델레드와 달리 국민들과 어울리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 뛰어났다고 한다. 거리 악사로 변장해 데인족 진지에 들어가 전사들을 즐겁게 해 주면서 전략을 캐 오거나, 몸을 숨긴 농가에서 농부 부부가 봐 달라고 부탁한 불가의 케이크를 근심에 빠져 태워먹자 부인은 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맡긴 일 하나 못 한다고 혼을 냈는데, 왕을 알아본 남편이 용서를 빌었지만 부인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등의 일화가 전해진다. 

윈체스터 수수께끼 중 (에이보르가 쫌쫌따리 창문 가린 선반 옮겨서 밝혀준)신의 빛이 가리키는 대로 알프레드 왕의 전기를 쓰겠다고 하는 애서가 나온다. 실제로 알프레드 대왕의 업적은 애서의 전기 덕에 전해지고 있다. 

878년, 알프레드 왕은 소규모 게릴라전을 반복하면서 바이킹들에게 제대로 된 승리를 안겨주지 않은 채 체력만 소모시켰고, 3개 샤이어의 군대를 모아 에딩턴에서 구스럼의 군대와 맞붙는다. 치열한 접전 끝에 방어선이 무너진 바이킹들은 치픈햄으로 도망치고, 알프레드는 한 때 자신의 성이었던 치픈햄을 포위한다. 이바르와 함께 십년 전 잉글랜드로 건너온 바이킹들은 약탈이 아니라 정착해서 살 수 있는 땅을 원했고,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던 바와 달리 웨섹스 땅을 점령하려면 앞으로도 몇 년 간의 혈투가 필요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구스럼과 알프레드는 평화협정을 맺고, 알프레드가 데인겔드를 지불하는 대신 구스럼은 군을 웨섹스 밖으로 물리기로 한다. 구스럼과 서른 명의 가장 뛰어난 전사들은 알프레드 왕을 대부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후 웨섹스와 머시아의 서쪽은 알프레드가 다스렸으며, 머시아 동쪽과 이스트 앵글리아는 구스럼이 데인족 관습에 따라 다스렸다. 이 지역의 데인족 정체성은 12세기 말까지 남아있었으며, 구스럼은 이스트 앵글리아에서 890년 눈을 감는다.

이후 알프레드는 바이킹들이 더 이상 잉글랜드를 침공하지 못하도록 모든 마을, 다리, 도로를 요새화하고, 농민 징병군 대신 전문 군대를 조직했다. 또한 모든 장교가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거나 그러한 부관을 고용하도록 했는데, 대부분의 병사가 문맹이었던 당시에는 굉장히 혁신적인 조치였다. 또한 교육에 힘써 다시금 수도원에서 성서를 필사하고 후학을 양성하게 하여 문화가 번성했는데, 이는 또 다른 바이킹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계기가 되었으나(...) 요새화된 알프레드의 영토는 892년과 894년 데인족의 침입을 모두 막아냈다.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바이킹 격퇴를 해내고 잉글랜드가 바이킹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낸 알프레드는 50세를 일기로 899년 사망한다. 바이킹이 다른 세 왕국을 모두 점령한 탓에 잉글랜드 내 유일한 앵글로색슨족 왕이었고, 이 때문에 향후 잉글랜드의 통합이 웨섹스의 왕관 아래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노섬브리아의 왕 노릇을 하던 늙은 하프단은 죽기 전 마지막 모험을 원했고, 875년 노르웨이 왕이 다스리던 더블린을 공격한다(이 결정으로 많은 수의 바이킹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하프단은 이 전쟁에서 사망한다. 

이교도 대군세를 이끌었던 이바르나 구스럼 등은 앵글로색슨 왕처럼 입고, 행동했으며, 바이킹들은 점차 잉글랜드의 종교, 패션, 농법까지 받아들였다. 10세기 정도 되면 데인족들은 바이킹식으로 이름을 짓고 바이킹 법을 따르긴 했으나 더 이상 스스로를 바이킹이라 여기지 않았고, 바다를 건너 넘어오는 데인족이나 노르드인 약탈자들을 자신들과 동류라 여기지 않았다. 대부분 기독교로 개종했고 정착하여 계급사회를 이뤄 살아갔다. 알프레드 대왕과 이후 2대에 걸친 후계자들은 데인족들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중앙집권적인 강렬한 잉글랜드 국가의 기틀을 세웠고, 희미해져 가던 노르드어와 문화는 데인족들이 스칸디나비안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미약했다. 하랄드의 아들 에릭이나 이바르의 증손자 올라프 시트릭손 등이 이후 요르비크를 노리지만, 954년 에릭이 추방된 이후 요르비크는 영구적으로 잉글랜드 왕국에 편입되고, 두 번 다시 바이킹 왕을 갖지 못한다. 

 

아일랜드

바이킹들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아일랜드, 특히 더블린이다. 발할라 첫 번째 DLC '드루이드의 분노'에서 더블린의 무역 체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했던 것처럼, 바이킹들은 더블린을 최고의 무역 허브로 키워냈다. 바이킹들은 최초로 더블린에 동전과 상인 계급을 도입했으며, 8세기 즈음 거의 사라져 가던 노예 거래를 부활시켜(게임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바이킹들은 노예를 부렸다) 아일랜드의 마지막 바이킹 왕이 죽던 1171년에는 고대 로마 이후로 가장 왕성하게 노예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사는 죽여도 민간인은 안 죽이는 에이보르이니 노예거래는 나오지 않지 않을까?

데인족이 프랑크 왕국을 신나게 침탈하는 동안,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8세기 말부터 아일랜드를 침략, 암흑의 중세 시기에 유일하게 빛나고 있던 아이리쉬 르네상스를 마구 약탈했다. 9세기 초에 아일랜드를 약탈하던 노르드인들은 처음엔 금에만 관심이 있어 유골이나 유물은 바다에 버리고 성유물함만 가져가거나 성서의 표지(당시 성서는 교회에만 허용된 매우 귀중한 자산이라 표지를 금과 보석으로 장식했다)만 뜯어 갔는데, 아일랜드인들이 내용물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걸 알게 된 후 유물을 인질 삼아 돈을 뜯어내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데인족들을 따라해서 인질도 엄청나게 잡게 된다. 지위가 없어 값이 안 나가는 인질들은 발트해나 이슬람의 노예 시장에 팔았다... 노르드인들이 전술을 바꾼 후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나머지 바이킹들이 오지 못하게 날씨가 나쁘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켈틱 문화를 다룰 드루이드의 분노

더블린에 최초로 바이킹 정착지를 세운 토르길스 (Thorgills) 왕이 죽고 데인과 노르드인들이 서로 더블린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는데, 이 때 데인족을 이끌었던 게 뼈 없는 자 이바르다. 이 때가 849년이고, 에이보르와 만난 게 873년으로 추정되니 게임에서 '늙은 노인'으로 묘사된 것처럼, 게임 속 이바르는 못 해도 사오십대는 됐을 것이다.

 

파리 포위

두 번째 DLC 파리 포위가 이 시기이다

알프레드 왕이 이교도 대군세를 막아낸 후, 약탈자들은 잇따라 프랑크 왕국으로 향한다. 885년 여름, 유럽 대륙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이교도 군대가 파리에 도착했다. 라그나르 로스브로크의 파리 점령이나 이바르가 이끌던 이교도 대군세와 달리 이 침략자들에게는 단일 지도자가 없었고, 파리인들은 교섭할 누군가를 보내려 해도 바이킹 전군을 대신해 얘기할 특정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곳에 온 목적이 뭐냐고 묻자, 그들은 자신들이 '데인족이며, 프랑스를 정복하러 왔다'고 했다고 한다. 9세기 바이킹들은 자유로운 언행에 중점을 뒀으며, 모호한 개념보다는 사실을 그대로 언급하길 선호했다(감성시인 에이보르와 달리). 대부분 쫓겨나거나 갈 곳 없는 이들로, 스스로의 명성을 떨치고 재물을 얻고자 했지 애국심이나 의무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속력 또한 클랜이나 친족끼리의 느슨한 연대만 존재했다.

파리 포위전에서 성벽에서는 끓는 기름을 붓고, 바이킹들은 던질 수 있는 모든 것(나뭇가지, 동물사체, 죽인 포로까지)을 던지다 안 되면 볏짚과 기름을 채운 롱쉽에 불을 붙여 성벽에 갖다 박았다. 사령관 중 하나였던 지그프리드(Sigfred)는 공성전을 포기하고 라그나르 로스브로크가 받았던 은화에 비하면 볼품 없는 60파운드의 은화를 받고 떠나기로 한다. 허나 지그프리드는 사령관 중 한 명일 뿐이었고, 많은 수의 바이킹이 그와 함께 떠나기를 거부하고 파리에 남는다. 포위가 10월까지 질질 이어지는 가운데 이탈리아에 있던 뚱보왕 카를(Charles the Fat)이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파리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바이킹들의 공격을 막아낸다. 뚱보왕 카를의 정예군은 바이킹 진지를 포위했으나, 양측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협상을 제의한다. 카를은 부르고뉴에서 모반을 꾀하던 신하를 겸사겸사 처치할 생각으로 바이킹들에게 센 강을 지나게 해 주고, 부르고뉴에서의 약탈도 허가한다. 또한 프랑크 왕국 영토를 떠나는 대가로 700 파운드의 은화를 수여한다. 목숨 걸고 성을 지켜낸 파리 시민들은 격노했고, 협정을 무시하고 센 강으로 향하는 강가를 막아 버린다. 바이킹들은 육로로 롱쉽을 끌고 봉쇄된 구역을 돌아서 갈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떠난 지그프리드나 다른 바이킹들 그 누구도 프랑크 왕국 영토를 약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프랑크 왕국을 신나게 짓밟는다. 3년 후 뚱보왕 카를은 폐위되고, 파리 포위전에서 파리 방어를 지휘했던 백작 오도(Otto)가 왕으로 선출된다. 

파리 포위전에 참여헀던 걷는 자 롤로(Rollo the Walker)는 부르고뉴를 신나게 약탈하다 910년 마을의 주교가 모은 민병대에 쫓겨난다. 이듬해 롤로는 샤르트르로 진격하나, 다시금 민병대에 의해 도시 북쪽의 언덕에 갇히게 된다.

그래 얘요 얘... 전반적으로 스크립트 쓸 때 잠시 졸았나 싶었던 에섹스... 전해지기로 롤로는 기골이 너무 장대해서 말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걸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걷는 자 롤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 없는 야간 전투는 자살행위였지만, 바이킹들은 어둠을 틈타 습격하고 적군이 모이기 전에 흩어지는 데 익숙했다. 롤로는 이른 아침 전사 몇 명을 보내 적진에서 습격이 있는 것처럼 뿔피리를 불게 하고, 잠에서 깨 무장도 못 하고 나온 적들을 학살한다. 롤로는 루아르의 강둑까지 진격하지만, 롱쉽에 전군이 승선하기에는 프랑크 군대가 바싹 뒤쫓아와 있었다. 롤로의 군대는 손에 닿는 모든 가축을 학살하여 사체로 벽을 쌓았고, 프랑크의 기병대가 도착했을 때에는 말들이 피 냄새에 겁먹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 했다. 상류에서 탈출로를 막고 있던 단순왕 카를(Charles the Simple)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돈이 드는 군대를 계속 유지해도 몰려드는 바이킹들을 전부 막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이미 프랑스에서 주조한 동전의 1/3이 바이킹 손에 들어가 데인겔드로 파산할 지경임을 알고 있었기에, 오십대 중후반의 롤로가 이제 정착해서 노동(약탈)의 성과를 누리고 싶어할 거라 판단하고 땅을 하사해 바이킹들이 스스로 지키게 한다. 롤로는 개종하는 조건으로 루앙에서 에브뢰까지 이르는 센 강 유역의 영토를 하사받았으며, 주어진 영토를 지키고 필요 시 병력을 지원하도록 했다.

롤로와 전군이 세례를 받았으며, 롤로의 전사들이 세례 후 새 흰 튜닉을 받자 여러 번 세례를 받으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바이킹 군주가 대중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만은 있을 수 없었으므로 롤로는 왕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은 거절했고, 대신 위임 받은 부하는 왕의 발을 입가로 번쩍 들어 입 맞췄다고 한다. 이 영토는 노르드인의 땅이란 뜻으로 테라 노르마노룸, 이후 노르망디가 된다. 롤로는 자신들이 파괴한 수도원과 교회를 재건하고, 마을을 철저히 수비하고 주요 부하들에게 땅을 나눠줌으로써 기동력을 우선시 했던 바이킹들에게 지주제를 도입했다. 이후에도 롤로는 카를에게 충성했으며, 923년 반란이 일어나자 군을 이끌고 지원하기도 했다. 노르망디는 11세기까지도 거쳐가는 바이킹들을 마을에 정박시키고 보호해 주었으나, 이후 센 강에 더 이상 대규모 바이킹 습격은 없었다. 노르망디도 프랑스의 관습을 따라갔으며, 노르망디는 프랑크 왕국의 문화와 종교, 노르드인의 정력적인 에너지가 합쳐져 바이킹이 이뤄낸 가장 성공적인 산물 중 하나가 되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나오는 NPC 대부분이 역사 속 인물임을 알게 되니 좀 더 주의 깊게 컷씬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실제로는 매우 용맹한 전사였던 오스월드 왕(!!), 부르그레드를 이어 왕이 된 머시아의 체올울브 왕 등 수도 없이 많은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하지만, 스토리의 큰 줄기인 이교도 대군세와 알프레드 왕 중심으로 기술해 보았다. 내용의 많은 부분은 The Sea Wolves: A History of the Vikings를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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