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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7시간을 이기는 토카이 와인 본산지의 황홀한 경험
헝가리 여행 후기를 이걸로 시작할 줄은 몰랐다(나는 아직 여행 4일차이다). 헝가리에는 우아하게 부패한다는 뜻의 귀부와인이 유명한 토카이 와인이 있고, 토카이 지방에 가면 여러 양조장들의 투어 및 시음이 가능하다. 그 중 데메테르 졸탄이라는 와이너리를 회사 선배에게 추천 받아(무한감사) 가게 되었다. 데메테르 졸탄 양조장 투어 예약은 https://www.demeterzoltan.hu/에서 가능하다. 금액은 인당 10,000포린트가 조금 안 됨.
데메테르 졸탄은 Tokaj역에서 도보 30분이지만 부다페스트에서 Tokaj 역으로 가려면 배차가 나쁜 버스로 갈아타야 해서, Budapest-Keleti 역에서 토카이 인근 Bodrogkeresztúr 역으로 기차를 탔다(MAV 어플에서 구입). 직행을 타면 2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토카이에 가면 우버가 안 잡히는데, 토카이 지역 콜택시가 있다. 운행 중이거나 거리가 너무 멀면 거절하는 것도 같았는데 다행히 왕복 두 번 다 10분 내로 왔다. 역에서 와이너리까지는 5,000포린트 정도 소요된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서성이는데 인터넷에서 본 듯한 얼굴이 보이더니 미스터 졸탄...?이라고 했더니 맞단다;; 냅다 셀피 찍어주시고 어디서 왔냐, 와인 좋아하냐 등을 물어봤다. 우리가 예약한 날 다음날에도 한국인 두 명이 오직 데메테르 졸탄만 왔다가 귀국한다는데 어디서 이 싸우스 코리안들이 오는 거냐고 하심. 팬서비스 너무 잘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1시간 정도 시간이 떠서, 졸탄 씨가 추천한 신축 광장 쪽으로 향했다. 나중에 투어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원래 주민들이 살던 올드타운이 있고 새로 지은 뉴타운이 있는데 토카이 주민의 2/3이 뉴타운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월요일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매우 한적하고 잘 닦인 도로 양 옆으로 예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타운을 가로지르는 티서 강이 보였다. 인포 센터에서 Hösk tere라는 뷰포인트를 추천해줘서 잠시 가 보았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커다란 십자가가 있고 타운이 내려다보인다. 강가에는 카약 등 수상레포츠 센터도 보였고 신축 건물을 계속 짓는 중이었다. 마을 분위기가 좋아서 하루 정도 자면서 와인에 절어있고 싶은 분위기였다.


시간이 다 되어 데메테르 졸탄 와이너리로 돌아갔다. 매일 3시부터 오픈하고, 투어는 한 번에 한 팀만 받는 것 같았다. 졸탄의 부인인 아네트가 맞아주었고, 과거 경험한 20명씩 그룹으로 시간맞춰 들어가는 컨베이어 벨트식 와이너리 투어와 비교되며 황송해졌다.

데메테르 졸탄 와이너리는 150년 전 제빵사가 살던 건물을 구매하여 양조장으로 바꾸고, 그 후 옆에 붙어있는 230년 된 건물을 사서 6년에 걸쳐 리노베이션했다고 한다. 졸탄 부부의 집도 바로 옆에 있는데, 이 곳이 와이너리인지 분위기 좋은 테라스 카페인지 와인을 전시해 둔 박물관인지 모르게 테이스팅 공간과 정원을 잘 꾸며두었다. 작년 폭염이 극심했을 때 길고양이 2마리를 입양했다고 하는데, 이로써 더 완벽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와이너리가 110% 완벽해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숙성 및 여과과정을 볼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새콤한 와인 향이 덮쳤다. 오크통은 프랑스산을 사용하기도 하고 토카이산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향이 좋다고 하자 1차발효 단계의 와인을 보여줬는데 부유물 때문에 색은 별로였지만 향은 압도적이었다. 24개월부터 15년 정도 숙성하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데일리로 신기술이 나오고 트렌드가 바뀌는 세상에서 15년 후를 기약하는 아티장이 있다는 게 존경스러웠다. 15년 숙성해야 하는 와인을 16년에 시작한 게 있다길래 5년 정도 남았느냐고 했더니, 기억에서 치워둔다고 한다ㅎㅎ


다음 공간은 병입해서 숙성시키는 곳이었다. 라벨이 붙지 않은 병이 가득하다. 여기에서 데메테르 졸탄의 와인 농장에 대해 들었는데 졸탄은 총 7헥타르의 땅을 가지고 있고, 졸탄 고향의 0.3헥타르의 땅을 포함, 이 지역 곳곳에 총 8군데에 농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래 지도에 핀으로 표시된 게 졸탄의 농장이다. 토카이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와인이 생산됐는데 그 중 졸탄 와이너리가 있는 곳은 (과거 훨씬 추웠던 시절)여름이 따뜻한 남부 지역이고 과거 화산이 있었던 지역이라 토양도 와인 재배에 알맞다고 한다. 필록세라가 유행하기 이전에는 토카이 지역에서 아무렇게나 여러 품종이 재배되고 있었으나 유행 이후 관리제도를 개편하여 한 지역에 2~3가지의 품종만 심도록 제한하고 있다. 졸탄은 그 중 한 군데에서 적포도를 소량 재배 중인데 이 품종제한을 풀기 위해 (아네트가)엄청난 서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와인 재배 공정을 들으면 기상학과 과학인데 동시에 또 엄청난 예술이다. 정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메이커가 퀄리티를 판단하여 세상에 내놓는 거니까.


테이스팅 전에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자면 ♡고양이♡가 고개를 내민다. 6종의 대표 토카이 포도 품종이 심겨있고, 각 포도마다 흙이 다르다!



드디어 기다리던 테이스팅 타임... 총 5종의 와인을 맛보게 되고 마지막에는 시크릿 코스도 있다고 한다. 설명이 끝나고 이미 1시간이 지나 있어서 투어 한 1시간 반 하려나? 싶었던 우리는 너무 놀랐다.

첫 번째 와인: Tokaji Pezsgõ 2022 스파클링 와인
데메테르 졸탄은 토카이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 허가를 받은 양조장이라고 한다.
코르크를 엄청 비싼 것도 써 봤는데 가격 대비 퀄리티 컨트롤이 안 되어서 새로 개발한 뚜껑을 썼다고 하는데, 병뚜껑 스커트를 뜯어내면 아래 같은 모양이 남고 상단 버튼을 누르면 밀봉되게 되어 있다. 허구헌날 코르크 열다가 병 속에 빠뜨리는 나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다.
졸탄의 스파클링 와인은 거품이 너무 톡 쏘지 않고 크리미한 게 특징이라는데 마시자마자 이해했다. 스위트 와인에 한국인적 '너무 달지 않다'라는 칭찬이 맞나 싶지만 거품과 맛 모두 상큼하고 내츄럴한 맛이었다. 한입 마시자마자 이거 사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난 뒤이어 마시는 모든 와인을 두고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와인: Tokai 2024 드라이 와인.
드라이 와인답게 앞선 스파클링 와인에 비해선 당도가 훨 낮은데 딱 산뜻하고 균형감 있다. 맛이 은은해서 부담 없이 마시기 너무 좋았다. 아네트와 얘기하느라 잔에 따른 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랬다. 이 친구를 가지고도 이건가? 역시 이걸 사가야 하나? 고민했다. 이건지 다음 와인인지 정확하진 않은데(적어둘걸!!) 이미 결과물이 좋아서 병째로 숙성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릴리즈한 와인이라고 했다.

세 번째 와인: Tokaj 2024 Szerelmi 드라이 와인
Szerelmi 지역의 싱글 바인야드 와인이다. 코를 대면 꿀향기가 확 나고, '세미 스위트 와인'이라는 설명답게 산미 있고 당도가 높고 맛이 풍부한데(아네트 설명으로는 입안에서 맛의 폭탄이 터지는 포도라고) 입안에 남는 느낌 없이 깔끔했다. 토카이 와인 재배의 황금기였던 200년 전과 비교하면 기온은 그렇게 높아지지 않았지만, late harvest로 알려진 토카이 와인의 포도 수확이 200년 전에는 10월 초부터 수확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8월 초에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폭염, 태풍 등으로 당도와 도수를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아주 짧은 시일 안에 끝내야 할 때도 있다고. 이 정도면 공예다...

네 번째 와인: Tokaj 2024 Muscat Blanc
원래 무스카토 와인은 만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도해봤는데 아주 잘 나왔다고 하는ㅎㅎ 와인. 말해뭐해 맛있었다... 무스카토마저 맛있었다... 입에 끈적하게 남는 단맛이 하나도 없다. 구매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그래도 토카이 와인하면 다른 대표적인 종류들이 좋을 것 같아 보류한 와인...

다섯 번째 와인: Eszter 2023 Tokaj Szamorodni
미친놈 나왔다 미친놈... 사모로드니라서 기대했는데 먹는 순간 이거구나. 이게 토카이 와인이구나. 이런 느낌이었다. 사모로드니가 이러면 아쑤나 에센시아는 대체 어떤 맛일까... 옆에는 부패한 포도가 보인다. 블루치즈를 같이 갖다 줬는데 먼저 와인 한입 하고(이미 머릿속에 폭죽터짐), 치즈랑 같이 한입 더 하면 단맛은 더 진해지고 치즈의 끝맛은 더 풍부해지면서 황홀한 맛을 느낄 수 있음. 스위트 와인은 블루 치즈나 잘 숙성된 체다치즈(흰것), 푸아그라 등 짠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아네트가 친구들에게 스위트 와인을 어떤 음식과 함께 내놓아야 할지 고민하다 찾아냈다며 추천해줬다. 이 친구는 지금 나와 함께 기차에 타고 있다.

시크릿 코스: Tokaji Aszú "Boda" 2021 Magnum
라고 했는데 아쑤가 나왔다. 데메테르 졸탄의 가족농장에서 생산된 것이고 21년에 말벌 피해가 심해서 와인 생산은 글렀고 친구들한테 엑기스나 나눠주자 싶어서 갔는데, 말벌이 헤집어놓은 덕에 두꺼운 포도껍질을 뚫고 곰팡이균이 침투해서 높은 당도의 아쑤 와인이 완성됐다고 한다. 몇 주 전에 졸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어머니 또한 농장에서 일을 많이 하셨어서, 어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딱 53병만 생산되었다. 이미 투어 시작 전 대기실에 어마무시하게 진열된 것을 가격표와 함께 보았기 때문에(약 370만원) 따라주길래 보여만 주는 거 아니고 마시게 해주는 거냐고 소리 지름. 달고 맛있고... 뭐라 말하기 힘들다. 달다는 맛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복합적인 맛이었다... 세상에 나랑 보다만 남았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설탕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당도가 높은 와인을 noble wine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초코파이도 제로슈거가 나오는 시대에 새삼스러운 사실.

만족 그 자체인 테이스팅을 마치고 나니 2시간 반이 흘러 있었다. 하루에 최대 2타임 받으려나!? 너무너무 프라이빗하고 만족스러운 테이스팅&투어였다. 포도 품종이며 산지며 잘 와닿지 않았는데 마시면서 들으니 중요성을 조금 알게 된 느낌이다. 데메테르 졸탄은 작은 양조장이라서 데메테르, 아네트, 라벨링 도와주는 직원 한 명, 와인 농장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크루 몇 명이 다라는데 투어를 이렇게 자세하게 해 주고... 토카이 지방의 200년 된 와인제조에 관한 책이 원래 인근 도시의 미술관에 소장돼있었는데, 토카이 박물관에 옮겨오도록 로비한 것도 이 양조장이라고 한다. 아네트 또한 토카이 출신이라는데, 나고자란 마을의 생업을 극한까지 발전시켜서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외부에 소개하는 삶도 있구나 싶은, 나는 생각해보지 못한 삶이 너무 멋져 보였다.
돌아올 때도 (쇼핑백을 바리바리 든 채)콜택시를 타고 Bodrogkeresztúr 역으로 왔다. 기차가 몇 개 없는데 20분 동안 결제가 안돼서 노숙할 뻔 했다... 왕복 7시간에 달하는, 하루를 통째로 잡아먹는 일정이었지만 후회는 1도 없다. 사실 와인에 대해 더 아는 게 많았으면 더욱 흥분되는 여정이었겠지만 문외한인 나에게도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소중한 사람들과 와인을 오픈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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