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읽은 책
1. 예술하는 습관 (메이슨 커리 지음, 걷는나무 펴냄)
저자가 예술가들이 창작을 하기 전에 행하는 의식이나 루틴을 취재하여 엮은 <리추얼>이라는 책을 펴냈었는데, 여성 예술인 비율이 20% 미만임을 자각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여성 예술가들만을 대상으로 취재한 책이 <예술하는 습관>이다. 작가, 미술가, 조각가부터 저널리스트나 연극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인들의 루틴을 다뤘는데, 한 번 집중하면 식사도 하지 않고 20시간씩 창작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예술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보니 출근하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창작 행위를 하고 주말이나 저녁은 가족들에게 할애하는 경우가 많았다. 글쓰기든 공부든, 일이든 꾸준함과 루틴이 중요한 듯 하다. 또한,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과거의 예술가들 뿐 아니라 쿠사마 야요이 등 동시대의 예술가들을 인터뷰한 점도 참고가 되었다. 일곱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에만 글을 쓰거나, 연인과 숲 속 오두막에 칩거하며 글만 쓴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놀랍기야 하지만 별로 참고가 되진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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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제랄드 브로네르 지음, 책세상 펴냄)
트럼프 신봉자들이나 노인층 사이의 극우 유투브 붐처럼 인터넷에서 왜 쉽게 극우주의로 빠지는 지 같이 정치 성향 관련한 책인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는 음모론이나 가짜 뉴스에 관한 책이었다. 무한하게 정보를 공급할 수 있고 또 그 정보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이 진정으로 민주적으로 보급될 수 있는 인터넷망이 생겼는데 왜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판을 치는가? 더불어 인터넷이 그것을 어떻게 확대 재생산하는가를 인간 이성이 범하기 쉬운 근본적인 오류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수준이 올라갈 수록 유사과학이나 음모론을 믿게 될 가능성도 올라가서, 자신의 신념(스스로는 지식이라고 착각하는)을 끊임 없이 의심하고 불신하는 태도와 그를 위한 별도의 집단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면밀하게 분석하기보다 대상에 대해 이미 갖고 있는 신념이나 이미지에 의거해 판단을 빨리 처리해버리려는 인지적 구두쇠 현상 또한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전한 경향인데도!). 이 책을 보니 통계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급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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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년세세 (황정은 지음, 창비 펴냄)
가족이란 관계는 각자가 별개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피할 수 없이 옭아매 오고 짐이 되고... 해주고 싶었지만 해주지 못한 것, 해주기를 바랐지만 받지 못한 것들을 이순일이 한영진과 한세진에게, 한영진이 한세진에게 유산처럼 물려 주지만, 그럼에도 한세진은 새로운 결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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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비채 펴냄)
흑인 여성 SF작가라는 정체성이 짙게 드러난 장편. 흑인들이 노예로 부려지던 시절로 떨어진 주인공은 생존 그 자체를 위협 받으며 조상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피로 얽힌 애증의 관계를 천재적으로 그려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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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블러드 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비채 펴냄)
외계생명이 점령한 지구에서 인간이 숙박료로 뭘 내야 하는지가 메인 테마인 단편 소설집. 세계관이나 설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사건이 풀려나가면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세계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건강하지 못한 기묘한 관계 묘사에 탁월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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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매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엘리 펴냄)
영화를 보고 느꼈던 기묘한... 아름답긴 한데 이거 너무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지 않나 했던 기분에 못을 콱 박아준다. 노매드들은 삶의 방식보다는 사회문제의 부산물이었으며 책이 지적했듯이 차에서 잠만 자도 경찰의 총에 맞는 걸 두려워하는 흑인들은 없고 백인들만 노매드 생활이 가능하단 점도 그렇고, 노매드를 나름의 자족적인 삶의 방식으로 묘사한 영화가 책의 핀트와 많이 어긋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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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코리올레이너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동인 펴냄)
몰락하는 영웅 얘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민주주의가 태동하던 시기, 화합이 굴종이라 여기는 코리올라누스는 홀로 고결하게(좋은 뜻 아님) 죽는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정치극 성향이 짙고, 후반부 드라마가 좀 맥빠지기에 왜 인기가 별로 없는지는 이해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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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마스 하디 지음, 나무의 철학 펴냄)
아름다운 영국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남자의 한 여자 괴롭히기, 라고밖에는 말 할 수가 없다. 미혼의 몸으로 직접 농장일을 돌보는 밧세바 에버딘 캐릭터 때문에 최초의 페미니스트 문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데, 이게 페미니스트 문학이라면 19세기의 여성 인권 어디까지 간 건지...? 특히나 당신이 먼저 나 착각하게 했잖아, 하면서 결혼을 압박하는 볼드우드가 너무나 리얼하게 그려져 있어 숨이 막히고, 여자는 원래 비이성적이라~ 식으로 툭툭 당연하게 튀어나오는 여성혐오적 묘사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재미있는 편이었는데도 고전읽기가 괜히 힘든 게 아니다. 산전수전을 겪은 밧세바는 결국 자신의 결함인 6오만함9과 6허영9을 버리고 자수성가남과 결혼하다니... 이 기독교적 색채가 또 기가 막힌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 여정이라며 아름답게 포장하지 마시오, 공포 그 자체였으니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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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해냄 펴냄)
중학생 때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재미있긴 정말 재미있는데 섹스에 너무 집착해서 영감탱그만하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남성작가가 화자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그를 통해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자세히 묘사할 때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역함이 있다. 재미있긴 진짜 재미있다 그런데...(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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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더클래식 펴냄)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니다... 피가 피를 부르고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계단을 꾸준히 오르는 주인공 얘기 너무 재미있다. 요즘엔 레이디 맥베스를 주축으로 해서 각색한 작품이 많이 보이던데 이런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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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갈매기 (안톤 체홉 지음, 범우사 펴냄)
참 잘 썼는데 숨막힌다 남자가 생각 없이 쏘아죽인 갈매기를 매우 직접적으로 여자주인공과 동치시킨다는 점이...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니긴 하지만 이제 박물관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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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지음, 허블 펴냄)
정석적으로 따뜻한 이야기다. (내 주제에)문장 같은 게 좀 덜 다듬어졌나 싶었는데 장편데뷔작이라 그런 것 같기도...? 예상 가능한 클리셰지만 클리셰라서 눈물 흘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로봇이 말을 타고 경기를 하는 스포츠가 있는데 장애인 이동권도 확보되지 않은 설정이라, 소설 속에서도 미래의 불평등을 상상하기에는 현재의 불평등조차 해결되기엔 멀었구나 싶었다.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6565162
13. 판교의 젊은 기획자들 (이윤주 지음, 멀리깊이 펴냄)
정석적으로 따뜻한 이야기다. (주제에)문장 같은 게 좀 덜 다듬어졌나 싶었는데 장편데뷔작이라 그런 것 같기도...? 예상 가능한 클리셰지만 클리셰라서 눈물 흘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로봇이 말을 타고 경기를 하는 스포츠가 있는데 장애인 이동권도 확보되지 않은 설정이라, 소설 속에서도 미래의 불평등을 상상하기에는 현재의 불평등조차 해결되기엔 멀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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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ducated: A Memoir (Tara Westover 지음, RandomHouseGroup 펴냄)
극단적인 몰몬교도에 편집증, 과대망상으로 산 속에 들어가 자녀들에게 공교육도 시키지 않고 둠스데이에 대비해 석유와 식량 등을 저장하는 데만 매진하던 집에서 태어난 저자가 어떻게 커뮤니티 컬리지 입학을 시작으로 박사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자전적 에세이다. 정부가 아이들을 세뇌시킨다고 생각해서 공립병원과 학교에도 보내지 않아, 저자는 홀로코스트의 의미조차 모르는 상태로 대학교에 입학하여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개어지고 학대로 인해 자신이 눌러왔던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건 자신 뿐임을 알게 된다. 저자가 대학에 들어가고 석박사까지 하면서 가족과의 연은 완전히 끊어졌지만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저자가 그저 경이롭고, 거대하게 확장된 세계 속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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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김상균 지음, 플랜비디자인 펴냄)
메타버스의 기술적 기반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메타버스의 개념과 실생활 용례를 다룬 책이었다. 메타버스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서 방탈출 게임까지 메타버스로 보고 호모 데우스 얘기까지 들어가니까, 누구나 다 아는 말을 메타버스로 그럴 듯하게 포장했구나 싶었다. 요즘 등장한 로블록스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만의 특징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비추천이다. 여전히 싸이월드와 제페토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둘은 과연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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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스노우맨 (요 네스뵈 지음, Vintage 펴냄)
이걸 이제야 읽었네... 싶은 유명한 책.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지만 결국 스노우맨은 뼛속까지 여혐살인마일 뿐이었다. 작가가 섹스에 너무 집착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럴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길게 썼어야 했나 싶고. 옛날 소설인 게 티가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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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 지음, 북스톤 펴냄)
송길영의 이전 책들은 데이터마이닝 자체가 낯선 분야였기도 했고, SNS 데이터를 모아서 트렌드 변화를 분석하는 게 새로운 시도라서 오~ 하게 되는 게 있었는데 책이 계속되다 보니 결국 또 기승전마케팅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저자 회사에서 마케팅 컨설팅을 받으라 이건가...? 데이터마이닝보다 그 결과물을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할 지에 주안점을 둔 책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0949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