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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펀홈 후기: 과거를 재구성한다는 것의 의미

BIBC/빕 2020. 12. 28. 20:24

뮤지컬 펀홈 (Fune Home)

공연기간: 2020년 7월 16일 ~ 2020년 8월 31일
공연장소: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출연진: 방진의/최유하(43세 앨리슨 역), 유주혜/이지수(19세 앨리슨 역), 유시현/설가은(9세 앨리슨 역), 최재웅/성두섭(브루스 벡델 역), 류수화/이아름솔(헬렌 벡델 역), 이경미(조앤 역)
원작: 앨리슨 벡델 
연출: 박소영
제작: (주)엠피앤컴퍼니 / 주관: 달 컴퍼니


기억이란 실제보다 아주아주 풍요롭다 과거로의 회상은 기억 자체로부터 기억 하나를 덜어낼 뿐이다. 기억이 삶 또는 자아를 세우는 기반인 한 귀향은 삶과 자아를 제거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 데이비드 밴, <자살의 전설>

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데,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우리를 만들고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25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현대의 치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망가졌는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 악스트지 15호 데이비드 밴 인터뷰에서


주인공 앨리슨 벡델은 장의사 집안의 딸로 태어나 대학 입학 후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후, 아버지가 실은 클로짓 게이였음을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달려오던 트럭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성공적인 그래픽 노블 작가가 된 43세의 앨리슨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본다. 

치마 대신 청바지를 입고 싶어하는 9살의 앨리슨에게 아버지 브루스는 너 빼고 모두 다 치마를 입고 있을 거라며 윽박 지른다. 앨리슨의 미술 숙제에 브루스는 회화 이론을 들먹이며 지나친 열의를 보이고, 앨리슨이 원하는 대로 그리고 싶다고 하자 다른 사람들 앞에 그런 수준 이하의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며 버럭 화를 낸다. 

19세의 앨리슨은 집을 떠나 대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심취해 있다. 용기 내어 문을 두드린 행동 한 번으로 운명처럼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자각하고, 조앤과 사랑에 빠진다. 격정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고백한 편지에 아버지는 무심한 척, 이대로 지나가 버릴 청춘의 한 때인 척 행동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혼 생활 내내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브루스의 '정상적인 척'하는 삶에 균열이 간다. 브루스가 트럭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43세의 앨리슨은 과거의 앨리슨들을 무대 한 켠에서 관망하며, 인생의 순간들에 캡션을 채워 넣는다. 어릴 때 아빠가 밤에 외출하던 게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나 봐. 아빠는 본인 스스로가 초라하고 구질구질해서 겉모습에 그렇게 신경을 썼던 거야. 이렇게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의 조각을 맞춰 가면서. 

시작은 신작 준비라는 일감에 불과했을 지 모르나, <펀 홈>은 성인이 된 앨리슨이 분노, 몰이해, 동정의 대상으로만 남아있는 아버지 브루스를 나름대로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브루스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고 아내에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삶을 안겼으며 아이들에게도 때로 가혹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펀 홈>은 그런 아버지를 다 이유가 있었다며 '용서'하고 '이해'하는 류의 (분통 터지는)서사와는 결이 다르다. 

이 뮤지컬이 있기 전, 저자가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삶의 조각을 꺼내서 다시 집필하고자 한 이유를 곱씹어 본다. 진보적 바람이 불던 대학 초년생 때 비교적 순조롭게 커밍아웃을 하고, 불 같은 첫 연애도 하고 오픈리 레즈비언 작가로서 커리어적으로도 안정기에 들어섰지만,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버지에 대해서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죽음과 아웃팅으로 인한 충격, 같은 게이이면서 왜 날 이해해주지 않았어?라는 분노,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질러 버린 자신의 커밍아웃 직후 아버지의 죽음에 당연히 수반되는 죄책감. 43세의 앨리슨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만화를 그려나가고 있지만, 결국 그 수많은 캡션도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일 뿐이다. 브루스는 커밍아웃은 꿈도 못 꿀 보수적인 동네에서 태어났지만 한 편으로 겨우 몇 km 떨어진 곳에선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고, 자신의 성적 지향을 혹시라도 들킬까 봐 우아한 고가구, 예술적 심미안과 점잖은 태도로 자신을 포장한 채 숨 죽이던 초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브루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어버렸기 때문에, 브루스가 욕망과 삶의 괴리 때문에 많이 괴로워했던 것도, 그래서 가족들에게 엄격했던 것도, 심지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것까지 모두 앨리슨의 입장에서 도출해 낸 임의의 결론일 뿐이다. 브루스가 나쁜 아버지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더라도, 어느 누가 자기 가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객관적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앨리슨은 자신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아버지를 나름대로 정의함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해방해주고 용서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펀 홈>은 <바이올렛>, <캐롤라인, 오어 체인지> 등 소수자로서의 여성을 많이 다룬 지닌 테소리(Jeanine Tesori)가 작곡, 리사 크론(Lisa Kron)이 작사했다. 장례식장(funeral home)을 재미난 집(fun home)이라고 줄여 부르며 장례 광고 CM송을 만들며 놀던 앨리슨과 형제들이나, 부모님이 다툴 때 인기 TV 시리즈에서 나오던 '행복한 가족(그야말로 자본주의가 팔던 허상 그 자체인)'이 부르던 노래를 떠올리며 도피하는 등 이중적인 넘버들이 인상 깊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때는 4면 모두에 객석이 있는 중앙 무대에서 공연했는데(마치 무대 자체가 하나의 직사각형 만화 컷 같다),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면서 2면에 객석을 접한 형태로 바꿨다. 연출 부분에 있어서는 뭐라 말을 얹을 게 없다 그걸 평가할 소양도 없을 뿐더러 완벽했기 때문이다... 9세 앨리슨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아역' 배우란 말이 무례하게 느껴질 만큼 잘했다. 그리고 작품 소재에서 게이와 드랙퀸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레즈비언, 그것도 현대의 레즈비언을 이렇게 정통으로 다룬 작품이 별로 없기도 하다. 원래 10월까지 공연 예정이었는데 관객이 없어 8월에 조기 폐막한 게 너무나 아쉬운 공연. 

커튼콜에서 9세 앨리슨, 19세 앨리슨, 43세 앨리슨의 다 함께 껴안고 마지막에 43세 앨리슨만 남는데, 커튼콜마저 서사에 완전한 마침표를 찍어주는 듯 했다. 앨리슨의 삶에서 브루스의 존재는 지울래야 지울 수 없고 삶을 구성하는 일부이지만, 그의 영향 아래 있었던 어린 앨리슨과 젊은 앨리슨 시기를 거쳐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현재의 앨리슨으로 거듭나는 과정(+수미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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